1979년 12월 11일, 12·12 군사반란 전날 태어난 송재희는 태어난 직후 바로 아버지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 아버지가 병원을 가기 위해 건너야 했던 다리가 군인들에 의해 통제됐었기 때문. 통제가 풀리자마자 아들을 보기 위해 달려간 송재희의 아버지는 매년 아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이날을 회상하곤 했다. 하지만 당시엔 언론 통제로 정확한 사실을 접하지 못했던 상황. 송재희의 아버지는 영화 ‘서울의 봄’ 덕분에 뒤늦게나마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송재희는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매년 생일이 되면 아버지는 늘 내가 태어난 1979년 12월 11일에 대해 회상하셨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버지는 막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퇴근을 하자마자 영등포 성심병원을 향해 한강을 건너시려 했지만 군인들이 대교를 막고 있어 새벽이 되서야 나를 만날 수 있었고, 그날이 1212사태, 12.12군사반란이었다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군인들의 통제가 풀리고 빨리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뛰어서 한강 다리를 건너셨고, 갓 태어난 막내 아들을 보자마자 입이 귀에 걸리신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엄마도 늘 말씀하셨다”고 말한 송재희.
그는 “얼마전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그간 아버지께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 역사의 그날을 볼 수 있었다”라며 “영화 중간 짧게 지나간, 한강다리를 건너지 못한 영문 몰라 보이는 몇 인파속에 발을 동동거리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도 마음의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라며 남다른 감상을 전했다.
송재희는 그런 부모님께 ‘서울의 봄’ 영화를 예매해드리며 “내가 본 아버지를 찾아보라” 말씀을 드렸다고. “영화가 끝나고 아버지께 문자가 왔다”는 송재희는 아버지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부를 공유하기도 했다.
함께 업로드된 사진에서 그의 아버지는 “44년 전 여의도 다리를 건너 추위에 떨며 병원으로 갔던 기억이 아련하다”며 “내가 오해했던 부분 한 가지. 당시 여의도 다리 입구를 통제하던 군인이 당시에는 반란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압군이었다”며 송재희에 말했다.
송재희는 “저도 영화 보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던 한강대교 풍경을 볼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이제 막 태어난 막내 아들 보기 위해 마음 졸이셨을 아버지 생각하니 뭉클했다”고 아버지에 답장을 보냈다.
송재희는 마지막으로 “딸 하엘이가 태어나고 처음 맞는 생일. 웃고 있는 아가를 보니, 오늘 유난히 아버지 어머니가 더 보고 싶다”라며 글을 끝마쳐 훈훈함을 자아냈다.
문혜준 에디터 / hyejoon.moon@huffpost.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