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사람 진짜 많다”, “이렇게 줄 서서 들어가는 거 정말 오랜만이네.”
4일 오후 6시께 CGV 용산아이파크몰 상영관 앞은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의 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검표하는 직원이 3명이나 동원됐지만, 모든 사람이 들어가기까지 15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대부분이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실황을 담은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이하 ‘디 에라스 투어’)를 아이맥스(IMAX)관에서 관람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아이맥스 스크린을 자랑하는 이곳은 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여주는 특별관으로 웬만한 흥행작이 아니면 매진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이날은 1열 가장자리 일부 좌석을 제외하고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600여석이 관객으로 빼곡했다.
‘디 에라스 투어’는 스위프트가 올해 3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동명의 월드 투어 중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콘서트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투어는 미국 티켓 수익으로만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세계 콘서트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앞서 투어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 스위프티들(테일러 스위프트 팬덤)은 12년 만의 내한을 기대했다. 그러나 스위프트가 아시아에선 일본과 싱가포르에서만 공연을 열기로 하면서 한국에서 그의 실제 무대를 만날 수 없게 됐다.
대신 팬들은 영화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의 경우 예매 시작과 동시에 주말 저녁 시간대 입장권이 매진됐다.
경기 고양시에서 왔다는 안호영(34) 씨는 “(스위프트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콘서트를 연) 2011년부터 계속 ‘언제 또 오나’ 기다렸다”면서 “이번엔 드디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했는데, 결국 또 못 오게 돼 실황 영화라도 보러 왔다”며 웃었다.
직장인 심모(24) 씨 역시 “내한 공연이 없어 해외에서 하는 콘서트까지 갈 마음을 먹고 티케팅을 도전했다. 하지만 예매에 실패해 영화관에 오게 됐다”고 했다.
이날 대부분의 관객은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스크린을 주시했다.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는 ‘싱어롱’ 상영회는 아니었지만, 작게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며 스위프트와 함께 호흡했다.
스위프트가 공연 중 “곧 후렴구가 나오는데, 여러분들은 가사를 아느냐”고 묻자 일부 관객은 이에 호응하듯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손을 머리 위로 올려달라”는 스위프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드는 관객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권소영(33) 씨는 “잡음 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게 만족스럽다”면서 “콘서트 현장의 열기나 생생함을 느끼진 못해도 이렇게나마 말로만 듣던 공연을 보게 돼 좋다”고 말했다.
콘서트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영화로 달래는 사례는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왔다.
특히 치열한 ‘피켓팅’으로 유명한 가수의 공연은 티켓 예매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 많은 팬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장인 한소은(28) 씨는 지난 4월 친할머니를 위해 가수 임영웅의 공연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싱어롱 상영회를 예매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이 담긴 작품이다.
그는 “콘서트는 ‘역대급’으로 경쟁이 심해 예매에 실패했고, 그나마 콘서트 분위기가 나는 싱어롱 상영회를 보여드렸다”며 “영화도 만만치 않게 피켓팅이어서 좋은 자리는 선점하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누적 관객 수 25만여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매출액은 약 6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개봉한 전체 한국 영화 중 25번째로 높은 수치다.
콘서트 당시 좋은 자리에서 관람하지 못해 다시 한번 영상으로 공연을 감상하거나, 단순히 가수를 여러 차례 보고 응원하기 위해 ‘n차 관람'(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일)을 하는 팬도 많다.
가수 김호중의 팬 카페에는 ‘바람 따라 만나리 : 김호중의 계절’ 응원봉 상영회 n차 관람을 인증하는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더 힘내서 관객 수를 올려 보자”는 응원 글도 이어진다.
김호중의 3번째 영화인 이 작품은 지난달 18일 개봉 이래 총 4만4천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CGV 관계자는 “‘바람 따라 만나리’ 관객 분석 결과 10명 중 1명은 김호중의 세 작품을 모두 다 봤고, 세 편 중 두 편 이상을 본 관객도 30%를 훌쩍 넘겼다”면서 “그만큼 코어 팬층이 탄탄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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