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좀처럼 웃지 않던 계나가 처음 미소 지은 건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땅을 밟았을 때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온 계나는 그토록 원하던 행복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첫 선보인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주인공 계나(고아성 분)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어느 날 갑자기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잠 못 드는 밤’, ‘한여름의 판타지아’, ‘달이 지는 밤’ 등을 연출한 장건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계나는 늘 피곤하다. 통근 왕복 4시간, 출근을 하자마자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계나의 얼굴엔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인간성과 존엄성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오직 생존본능을 발휘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계나는 자신이 회사의 부속품조차 못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성취가 사라진 계나의 일상은 건조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운운하는 남자친구에게 계나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가 어디인지 반문한다.
지친 계나는 탈출을 꿈꾸고, 이행한다. 마음 한편에 품고 있었지만 선뜻 내뱉지 못했던 ‘한국 탈출’을 실현한다. 번듯한 직장,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 7년을 함께한 남자친구를 두고 홀로 떠난다. 그리고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새롭지 않은 스토리라인이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하지만 진부하지 않다. 계나를 연기한 고아성은 평면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주인공 계나를 자신의 공식으로 덤덤하게 표현해냈다. 발악해도 한 계단 올라서기 힘든 사회 구조, 흙수저와 금수저 등 계나가 마주한 현실을 현실만큼 현실적으로 그렸다.
그 덕에 계나를 바라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오클랜드로 떠난 계나가 위태롭게 느껴지는 건 현실도피의 대가를 따져본 것일 테고, 계나를 응원하게 되는 건 그처럼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미련 때문일 테다.
낯선 땅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면 절대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문장을 가슴에 새긴 계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뚜렷하지 않지만, 한국에서처럼 스스로를 보채면서 살진 않는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만나 마음껏 웃고 떠든다. 계나의 얼굴에 편안함이 깃든다.
극 말미에 등장하는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 이야기는 사회가 규정한 ‘현실을 거스른’ 계나의 입장을 대변한다. 다신 추운 곳에 가지 않겠단 펭귄의 말처럼, 계나는 비로소 찾은 안정 안에서 자신의 템포에 맞춰 살아나갈 것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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