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 네 명 열연…에실 보그트 감독 두 번째 연출작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초기 기독교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자신이 유년기부터 악에 물들어 있었다고 고백하며 아이들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선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육체적으로 그럴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실 보그트 감독의 스릴러 ‘이노센트’를 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우구스티누스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의 특징은 주연배우 네 명이 모두 7∼11세의 어린이라는 점이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스릴러나 공포영화라고 하면 순수한 아이들이 악의 존재와 싸우는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노센트’는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악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의 한 아파트에 이사 온 여자아이 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언니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가 이웃에 사는 벤자민(샘 아쉬라프)과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를 만나면서 겪는 일을 그렸다.
이다가 벤자민을 처음 만나 함께 노는 장면은 유년기의 기억을 자극한다. 이다는 허클베리 핀의 인상을 풍기는 남자아이 벤자민에게 이끌려 아파트 근처 숲속에 들어가고, 그가 펼쳐 보이는 재주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영화는 아이들이 무심결에 하는 행동의 폭력성에 주목한다. 개미집에 커다란 돌덩이를 던지거나 길고양이를 괴롭히는 장면이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 저질러 봤지만, 까맣게 잊어버렸을 법한 행동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마따나 육체적으로 연약한 아이들이 무슨 대단한 악행을 저지르겠는가. 이를 잘 아는 듯 영화는 아이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노센트’에서 음향은 공포감을 자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흐르는 실로폰 연주는 무서운 이야기로 관객을 초대하는 듯하고, 안나가 마룻바닥에 그릇을 굴릴 때 나는 소리는 불안감을 일으킨다. 북유럽의 흐린 날씨도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이노센트’는 ‘블라인드'(2016)에 이어 보그트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2), ‘델마'(2018), ‘라우더 댄 밤즈'(2016) 등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작품의 각본가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의 아역배우 네 명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특히 안나 역의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보그트 감독은 아역배우 캐스팅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는 이들을 캐스팅한 뒤에도 영화의 내용을 한꺼번에 알려주지 않고, 극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알게 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끌어냈다.
이 영화는 제74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지난해 미국 아만다 어워즈에선 감독상을 포함한 4관왕을 했다.
6일 개봉. 117분. 15세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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