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원작(웹툰)보다 낫다는 얘기를 들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순정만화’, ‘바보’, ‘이웃사람’, ‘조명가게’ 등 수많은 히트작으로 웹툰 시대를 이끈 만화가 강풀이 이번에는 직접 쓴 시나리오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강풀은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여러 번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웹툰 ‘무빙’의 작가이자 동명의 드라마 각본을 쓴 강풀은 “원래 제 작품에 대한 반응을 잘 찾아보지 않는데, 요즘은 매일 인터넷에 ‘무빙’을 검색한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웹툰 ‘무빙’을 각색해 완성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지난 24일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 디즈니+ 시리즈 글로벌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뜨거운 화제를 끌고 있다.
강풀은 “원작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의 서사가 조금 더 풍부하게 그려진 것 같다. 만화에서는 포기했던 것들을 영상에서 구현해낼 수 있었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은 오히려 만화보다 영상 매체가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데 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장주원(류승룡 분)이 100대 1로 싸우는 장면은 만화로 그릴 생각을 하면 아득해요. 언제 그 100명을 그리고 앉아있겠어요. 근데 영상으로는 그게 되더라고요. 훌륭한 감독님과 배우님들이 해줄 거라는 굉장히 무책임한 믿음 덕분에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죠. (웃음)”
한국형 히어로물인 ‘무빙’은 초능력을 비밀로 한 채 서로를 지켜주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20부작으로 담았다. 무한재생, 월등한 오감, 비행, 전기발생, 괴력 등의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위험에 맞서 감춰왔던 자기 능력을 발휘한다.
강풀은 “캐릭터들의 서사가 가장 중요했다”며 “‘무빙’에는 기능적으로 쓰이는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짚었다.
그는 “원작자에 작가라는 사람이 모든 캐릭터에 다 애정을 쏟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며 “식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고를 수 없을 만큼 캐릭터 모두를 너무 아낀다”고 말했다.
“인물의 서사를 하나씩 풀어내면 전개가 늘어진다고 느끼게 하기 쉬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재미에 집착했죠. 인물들의 서사를 끝까지 보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만 재밌는 건 아닐까’ 무수히 고민했죠.”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에 초점을 맞춘 ‘무빙’은 강풀 작가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다는 평을 받는다.
강풀은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작가이지만 첫 번째 독자이기도 하다”며 “각박한 세상 속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고 했다.
“저는 성선설을 믿어요. 유모차가 찻길로 굴러가는 상황 속에서 누구 한 명은 꼭 나서서 잡아줄 것이라고, 그런 작은 선의가 모여 큰 선을 이루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에요.”
‘무빙’을 통해 첫 시나리오에 도전한 강풀은 “만화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면서 “스스로를 만화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 ‘무빙’ 시나리오를 쓸 때는 외도를 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반쯤 쓰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내 본업이 이야기꾼이라면 만화든, 영상이든 무슨 차이가 있나 싶다”고 덧붙였다.
“‘무빙’ 최종회까지 공개되고 나면, 처음으로 좀 쉬어볼까 합니다. 전까지 ‘쉰다, 쉰다’ 말만 하고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거든요. 두세달 정도 휴식기를 가지며 앞으로의 행복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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