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용가 다나카 민 예술세계 조명…이누도 잇신 감독 연출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일본의 무용가 다나카 민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름 없는 춤’의 관객은 처음엔 다나카가 기인이란 인상을 받겠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엔 그가 진정한 예술가란 생각이 들 것이다.
일제가 패망한 1945년 태어나 올해 78세인 다나카는 1974년 무용을 시작해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다나카의 춤은 즉흥성이 특징이다. 반복적으로 연습한 동작을 관객 앞에서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포함한 주변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마음에서 샘솟는 동작을 펼쳐낸다. 그의 춤이 ‘장소의 춤’으로 불리는 이유다. 춤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다나카의 공연을 보고 ‘이게 춤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한 ‘이름 없는 춤’은 다나카가 2017년 8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포르투갈, 프랑스, 일본을 돌면서 선보인 춤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았다.
다나카는 거리의 무용가이기도 하다. 그가 도쿄 거리에서 춤을 추면 행인들이 둘러선 채 감상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동선을 따라간다.
포르투갈의 뒷골목에서도 춤춘다. 행인들은 그것이 춤인 줄 모르는 듯 그냥 지나가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다나카는 왜 이런 춤을 추는 걸까.
‘이름 없는 춤’에서 다나카는 “내가 그 순간 그곳에 어떻게 있으면 되는가, 그것을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그게 춤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걸 춤으로 한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인류는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 춤으로 소통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그의 춤은 원형에 충실한 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춤을 출 때 다나카의 표정은 황홀경에 빠진 것 같다. 카메라는 그의 동작뿐 아니라 표정도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포르투갈의 골목에서 춤을 다 추고 “끝났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행복하다”며 미소를 짓는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다나카의 몸은 유연하다. 상의를 벗고 춤추는 그의 몸엔 군살이 거의 없고 단단한 근육이 눈에 띈다.
다나카는 ‘춤추는 몸’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 그의 근육도 헬스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고된 육체노동의 결실이다.
관객들과의 언어적 소통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가 프랑스의 한 성당에서 공연을 마치고 바닥에 앉아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성실하게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다나카의 예술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유년 시절 혼자 올라간 산에서 자그마한 구름 조각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깨달음에 자기가 오줌을 싼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야마무라 고지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진다.
다나카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황혼의 사무라이'(2002)로 데뷔한 그는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2019)에도 출연했다.
이누도 감독과는 영화 ‘메종 드 히미코'(2005)에서 함께 작업했다. 이누도 감독은 국내에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로 널리 알려져 있다.
9일 개봉. 115분. 12세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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