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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콘토피아’로 받을 상 고르라면? 당연히 남우주연상이죠” [TEN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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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인터뷰 장소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배우 이병헌(53)은 이내 선글라스를 벗으며 “영화배우니까요”라며 건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병헌은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인터뷰에 나섰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를 담는다. 이병헌은 902호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 역을 맡아 날카롭고 기민하게 연기했다. ‘눈을 갈아 끼운 연기’라는 박보영의 말이 체감될 정도의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여 놀라움을 줬다.

이날 이병헌은 ‘연기의 경지에 올랐나’라는 질문에 하하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병헌은 “저도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나? 놀란 장면이 있었다”고 했다.

“모니터를 보면서 나 스스로도 무서웠던 느낌이 있어요. ‘이게 뭐야 왜 이래 CG야?’라는 말이 나왔죠. 왜 이런 눈빛과 얼굴이지? 이런 얼굴이 나한테 있었나? 나한테 놀랐던 경험이에요.”

이병헌은 영탁 캐릭터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최대한 내가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가진 복잡미묘한 상태를 나 나름대로 추측하게 된다”며 “영탁은 이미 스스로 죽은 사람이고, 이미 삶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을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 사람이 뭔가를 대표하는 리더의 위치에서 새롭게 책임감도 갖게 되고, 리더가 되고, 뭔가를 하게 되면서 고민도 많았겠지만 즉흥적인 감정적인 판단들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과격한 부분들도 있고 ‘인생 뭐 있어?’ 하는 느낌도 있는 거 같아요. 영탁은 점점 커지는 권력을 자기 자신이 주체하지 못한죠. 그걸 어떻게 써야하는지 모르고 점점 광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병헌은 영탁 캐릭터로 다소 파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처음에 스태프들이 영탁 캐릭터로 몇 가지를 보여줬는데, 지금 그 스타일이 제 마음에 들었다. 왜 보면 머리가 두껍고 빳빳해서 옆으로 머리가 계속 자라는 사람 있지 않냐, 단면이 보일 정도로. 그래서 정말 좋다고 그랬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아이디어를 냈죠. 여기 이마를 약간 M자로 만들면 어떨까? 완전 파지는 말고 ‘아, 저 사람이 조금 더 있으면 M자가 확연하겠다’ 싶은 정도로요. 그렇게 스타일이 완성됐는데, 다들 좋아했어요. 그런데 내가 하자고 해 놓고 거울을 보니까 제 팬들이 다 날아갈 거 같더라고요? 이거 어떡하지 했습니다. 그래도 뭐 재미있다고 하니까 했어요.”

이병헌은 영탁이 주민 대표로서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줬다고도 했다. 그는 “영탁이 점점 권력이 생기면서 머리카락이 더 뻗쳐 나간다. 초반과 후반과 머리카락의 각도가 좀 다를 것이다. 갈수록 성게같은 느낌이다”라며 “다만, 그 변화를 모르게 줘야지 그걸 과하게 하면 그 순간 이상해 지니까 섬세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서준-박보영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 선남선녀이고, 귀엽고 잘 생기고 그런 친구들이면서 스타다”라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병헌은 박서준에 대해 “정말 건실하고 건강한 청년이다. 늘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허허허’ 웃는 친구더라”고 말했다. “그런 친구인데 또 연기를 할 때는 어떤 미묘한 감정을 연기해 내고, 캐릭터의 변화를 나름대로 계산해서 연기하고 하는 걸 보면 배우로서의 예민함과 섬세함은 안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늘 마음씨 좋은 청년 같은 모습이 평소의 모습이라면, 연기할 때는 예민한 배우였어요. 인간적으로도, 후배 배우로도 참 괜찮은 사람이더라고요.”

같은 소속사 식구인 박보영에 대해서는 “저희 회사인데 많이 볼 일이 없었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마주치게 됐는데 사실 저도 ‘박보영’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과속 스캔들’ 속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 있었다”고 했다.

“그런 모습만 늘상 있다가 나중에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당시 마음 가짐에 대해서 얘기하더라고요. 저와 대립하는 신에서 부담과 스트레스가 컸대요. 그래서 감독님이 조언을 한 게 나를 갈치라고 생각하라고 했다더라고요. 아무 것도 아닌 사물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래야 자기 기를 펼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좋은 생각이긴 한데 왜 갈치지?’라고 생각은 했어요. 하하! 박보영이 ‘선배님 되게 무섭잖아요’라고 그래서 제가 ‘나는 그날 네가 더 무서웠어’라고 했어요.”

이병헌이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보편성’이라고 했다. “삶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감정을 잃는 것은 굉장히 큰 걸 잃는 것”이라고 운을 뗀 이병헌은 보편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덕에 대중이 자신의 연기를 좋게 봐주는 것 아닐까 짐작했다.

“저는 늘 사람들을 관찰해요. 내 의도가 아니고 자연적으로 습관이 되어서.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이 쉽게 읽혀요. 저는 배우들은 되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서로 간의 호흡을 맞추기 쉬운 능력들을 갖고 있다고 봐요. 사람들을 파악하는 관찰력 같은 거. 저 사람은 왜 눈을 저렇게 깜빡거릴까? 왜 걸음걸이가 저럴까? 자꾸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많아요. 틀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게 도움이 많이 돼요. 영탁의 경우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있는 우울한 가장. 거기서 출발했던 거 같아요.”

더불어 끊임없이 순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제가 순수하다는 얘기가 아니고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이병헌은 “사실 되게 부러운 게 외국 나이 많으신, 예를 들면 마이클 만 감독은 그 연세에 점점 더 멋있고 세련된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거 같다. 그게 저는 아이같은 순수함 같은 게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고 생각을 전했다.

인터뷰 말미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상을 받는다면, 작품상, 감독상, 주연상 등 여러 부문 중 어떤 상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이병헌은 “당연히 남우주연상이죠!”라고 외치며 특유의 건치 미소를 발사했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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