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 역…”나이 든 덕 많이 봐”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역할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를 생각해야지, 내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일까를 생각하면 이 영화는 사달이 나요. 제가 주인공이 아닌데 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조인성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서 ‘권 상사’를 연기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6일 개봉하는 ‘밀수’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밀수 범죄에 휘말린 해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조인성이 소화한 권 상사는 해녀인 춘자(김혜수 분)와 진숙(염정아)을 대형 밀수 범죄에 끌어들이는 인물이다. 춘자와 진숙이 중심인 영화다 보니 권 상사의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조인성은 그러나 “역할이 크냐 작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춘자와 진숙의 이야기에 강력한 브리지(가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류 감독님이 캐릭터를 딱 써먹고 버리는 분도 아니고, 역할에 분명한 이유를 주시거든요. 김혜수·염정아 선배님 같은 주인공은 ‘공기’ 역할을 하시지요. 그런 강력한 공기가 있었던 덕에 고민시, 박정민 같은 후배들도 살 수 있었고요.”
‘밀수’는 권 상사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된다. 몇 년을 등지고 살던 춘자와 진숙이 재회하고, 두 사람이 다시 범죄 파트너가 되는 것도 권 상사가 나타나면서부터다.
강렬한 첫 등장신과 액션 장면까지 소화하면서 조인성은 적은 분량에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얼음송곳을 손에 쥔 그는 긴 팔다리를 이용해 장도리(박정민) 패거리를 시원스레 제압한다.
조인성은 “이번만큼은 (멋있게 낳아준) 부모님 덕을 좀 본 것 같다”며 웃었다.
“아무래도 나이 덕도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은 연기를 해도 더 젊었을 때라면 그 느낌이 안 나오기도 하니까요. 얼굴이 잘생긴 배우는 너무너무 많지만, 그건 매력과는 다르잖아요. ‘밀수’에서 제가 매력적으로 비쳤다면 ‘나이 듦’의 이점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하하.”
그는 스물 다섯살 때 찍었던 ‘비열한 거리'(2006)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조인성이 연기한 병두는 조직폭력배 중간 두목으로, ‘밀수’의 권 상사와 겹치는 면이 있다.
“그때는 이렇게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도 안 됐거든요. 사람들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도 하지만, 그 나이에만 나는 좋은 향기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 역시도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은 있죠. 근데 막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이제는 잘 나이 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불혹(不惑)을 넘긴 조인성이 연기한 ‘깡패’ 권 상사는 악역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다. 악랄하면서도 의리 있고 무엇보다 폼을 중시한다. 춘자를 묶어두고 살해 위협을 하다가도, 자기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식이다.
“그게 ‘전국구’의 품위가 아닐까요. 하하. 동네에 있는 장도리 수준이 아니고 말 그대로 우두머리잖아요. 류 감독님이 명확하게 주문하셨던 게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의 품위를 놓지 말라는 거였어요. 매너도 있으면서 약간은 어벙한 모습까지 녹이면서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조인성은 2021년 개봉한 ‘모가디슈’에 이어 ‘밀수’로 연달아 류 감독 작품에 참여했다. ‘모가디슈’ 홍보 일정을 소화하면서 ‘밀수’를 촬영했다고 한다. 드라마 ‘무빙’ 촬영 직전이었던 터라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기간이었음에도 조인성은 다시 한번 류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류 감독은 출연진 소개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조인성의 이름을 내보낸다. 특별출연이나 원로배우를 예우할 때 쓰는 ‘그리고’라는 말을 이름 앞에 붙이기도 했다.
조인성은 “적은 분량임에도 출연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제 신이 많지는 않았지만, ‘밀수’를 촬영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과정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완성된 거라 봐요. 그래서 ‘밀수’는 저에게 참 고마운 작품입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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