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신입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이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허지웅은 자신의 SNS에 “어느 젊은 교사의 삶이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에서 영원히 멈추어 섰다. 다른 무엇보다 장소가 가장 마음 아프다. 그곳이 아니면 개인적인 사유로 취급되거나 묻힐 거라 여긴 것”이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 19일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계에 따르면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담임 교사 A씨가 전날 오전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경찰과 교육 당국은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허지웅은 “지난 시간 그 수많은 징후들을 목격하는 동안 우리가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고 말할 수 있냐. 뉴스에서는 교권 추락이라는 말이 나온다. 학생들의 인권이 올라간 탓에 교사들의 인권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틀린 말이다. 교권이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누군가의 인권을 되찾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위협했다면 그건 애초 인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이다”라며 “교권이라는 말은 교실에서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리가 따로 존재하고 서로 상생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제한다. 아니다. 인권은 나눌 수 없다. 인권은 권력 투쟁이 아니다. 그런 잘못된 말의 쓰임과 인플레가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A씨는 올해로 2년 차를 맞은 새내기 교사로 지난해에 이어 1학년 학급을 맡았다. 그런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경위를 두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신규교사인 A씨가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A씨를 극단 선택으로 몰고 간 학생이 유력 정치인 집안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서울 교사노동조합은 “동료 교사에 따르면 지난주 A씨가 맡았던 학급에서 학생끼리 사건이 있었다. 한 학생의 부모는 이 사건을 이유로 교무실에 찾아와 A씨에게 ‘자격이 없다’라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며 “교육당국과 경찰당국에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수사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이와 관련해 허지웅은 “일부 학생과 부모가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방종하고도 아무런 견제를 받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걸 인권의 회복이라고 자랑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인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감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며 “이런 현상이 교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당했던 폭력과 부조리를 정상으로 애써 돌려놓았다면, 그간 악습으로 위태롭게 눌러왔던 것들을 원칙과 절차를 통해 규제할 수 있는 엄정한 도구 또한 함께 고민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하지만 그와 같은 룰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 정서가 원칙보다 죽음에 더 가깝다”며 “보나 마나 서로 탓을 돌리는 정치권과 진영의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마무리했다.
경찰은 해당 학교 교직원 등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으며,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20일 오후 3시부터 A씨가 근무한 초등학교에 모여 추모제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어느 젊은 교사의 삶이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에서 영원히 멈추어섰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장소가 가장 마음 아픕니다. 그곳이 아니면 개인적인 사유로 취급되거나 묻힐 거라 여긴 겁니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 그 수많은 징후들을 목격하는 동안 우리가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뉴스에서는 교권 추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올라간 탓에 교사들의 인권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겁니다.
틀린 말입니다. 교권이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인권을 되찾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위협했다면 그건 애초 인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교권이라는 말은 교실에서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리가 따로 존재하고 서로 상생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제합니다. 아닙니다. 인권은 나눌 수 없습니다. 인권은 누가 더 많이 누리려고 애쓸 수 있는 땅따먹기가 아닙니다. 그런 잘못된 말의 쓰임과 인플레가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일부 학생과 부모가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방종하고도 아무런 견제를 받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걸 인권의 회복이라고 자랑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인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감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현상이 교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당했던 폭력과 부조리를 정상으로 애써 돌려놓았다면, 그간 악습으로 위태롭게 눌러왔던 것들을 원칙과 절차를 통해 규제할 수 있는 엄정한 도구 또한 함께 고민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룰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되었습니다. 우리 정서가 원칙보다 죽음에 더 가깝습니까. 보나마나 서로 탓을 돌리는 정치권과 진영의 공방이 이어질 겁니다.
저는 남탓을 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결과물을 가지고 나올 쪽에 서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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