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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비’에는 ‘토이 스토리3’만큼의 감동과 향수가 없을까[TEN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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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비’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형을 다루는 영화들은 누군가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힘이 있기도 하다. 토이스토리3의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학을 진학하게 된 앤디가 이웃집 소녀 보니에게 자신이 놀던 우디와 버즈 그리고 인형을 건네주며 “얘들아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익숙하지만 삶을 충만하게 채워줬던 인형의 존재는 어른이 됨과 동시에 희미해지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는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꾹꾹 눌린 채 자리하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의미이자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일 터.

여기 기존에 지녔던 과거의 상징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고자 시도한 영화가 있다. 영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는 바비 인형을 소재로 확장된 세계를 마음껏 보여준다. 하지만 장난감을 소재로 했음에도 토이스토리3가 주던 감동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1950년대부터 출시했던 바비 인형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바비 인형의 지녔던 이해관계를 설명하는데 114분가량의 러닝타임을 사용했다. 그저 그런 장난감 소재 영화로 남아버린 듯 끝맛이 개운치 못하다.

1959년 첫 출시된 바비 인형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당시, 아기 인형만 가지고 놀며 엄마 역할만 해야 했던 소녀들에게 여성의 존재를 인식시킨 인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한 장면을 오마주하며 시작한다. 해변에서 아기 인형을 가지고 놀던 소녀들의 지루한 얼굴들로 시작하는 첫 장면은 이내 거대한 바비 인형(마고 로비)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면서 변화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소녀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아기 인형을 하늘 위로 던지고 바닥에 내리친다.

이 장면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유인원들이 갑자기 나타난 높이 4m가 넘는 거대한 비석을 발견한 이후의 행동과 동일하다. 유인원들은 비석 주위에 몰려가 살펴보고 도구로 사용하던 죽은 동물의 뼈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인서트가 함께 나온다. 이어 화면은 죽은 동물의 뼈에서 행성을 떠다니는 우주선으로 전환한다. 처음부터 감독 그레타 거윅은 바비 인형의 존재가 인류가 도구를 발견한 것과 같은 시발점이 되어줬음을 명명한다. 바비 인형이 기존에 지닌 인형의 틀을 깨부수고 선구자가 돼준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는 해당 장면이 지닌 무게만큼 극을 끌고 가지는 못한다. 배우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영화 ‘레이디 버드'(2017), ‘작은 아씨들'(2019)을 연출하며 주체적인 여성, 고정관념을 탈피한 여성,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여성 등을 그려왔던 만큼 ‘바비’에서의 판단에 의문이 든다.

‘바비’에서는 그 상징이 지닌 무게를 견디기 위해 다른 방면으로 비튼 부분이 많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는 바비랜드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던 중 균열을 발견한다. 어느 날 자기 발이 평평해진 것을 알게 된 바비는 이것을 고치기 위해 현실 세계로 넘어가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바비랜드와 현실의 경계는 1950년대의 바비가 가진 상징성과 2023년도 우리가 생각하는 바비의 격차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일 테지만, 다소 소모적으로 사용된다. 바비의 여정에 동행한 켄(라이언 고슬링) 역시 현실 세계에서 가부장제와 말, 남자들의 힘을 직접 목격하고 바비랜드에서 남자들의 위치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바비의 남자친구로서 삶의 의미가 목적이 주어진 켄은 바비랜드의 기존 규칙을 뒤바꾸기로 한 것이다. 바비는 인형을 제작하는 마텔사의 횡포로 바비랜드에 보내질 위기에 처하고, 바비의 주인인 인간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와 그녀의 딸 사샤가 바비를 목격하고 탈출을 도와주며 위기를 벗어난다.

액션물로 장르를 바꾼 ‘바비’는 마텔사로부터 탈출해 다시 바비랜드로 돌아온다. 만약 바비랜드가 아닌 현실에서 사건을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제한적인 상황이 가득한 바비랜드에서 세대가 공감할 시간적 격차를 뛰어넘는 커다란 사건을 만들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레타 거윅은 각성한 켄이 남성들의 가부장제 사회를 만든, 일종의 빌런 행위를 보여준다. 이에 대통령, 기자, 작가 바비들은 남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메이드로 전락한다. 과거 현실에서 행해졌던 남자들의 역할에 부속품처럼 여겨진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하지만 바비와 그레이스, 사샤에 의해 여자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바비랜드는 원상복구 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의미 안으로 우회하는 ‘바비’는 아쉬움을 가득 안긴다. 앞서 첫 장면처럼 바비 인형은 개척자이기도 했지만, 여성을 하나의 틀 안으로 규정짓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인형이다. 그만큼 영화는 미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고정관념을 깨는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켄과 바비가 권력다툼을 하며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편 가르기를 하고, 가부장제 사회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남자와 여자이기 이전에 ‘나’로 존재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바비는 정면 승부를 겨뤘어야 했다. 마텔사와 인간들의 이해관계보다 자신이 정말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레이스 전부를 끌고 오지 못한 점이 영화가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인 것 같다.

현실 세계에서 바비가 목격했던 어쩌면 그레타 거윅이 바비 인형에서 봤던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비가 현실 세계에서 봤던 싱그러운 햇살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가 싱그럽게 웃는 일상적인 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면, ‘바비’는 현실 세계에서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바비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했을 것이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세트 디자인과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노래들은 극을 풍부하게 했지만, 추억의 인형을 통해 공감하는 그 추억은 만들지 못했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나’로 존재하는 바비는 바비랜드로 돌아오지 말고 현실에서 부딪히며 자신의 조각들을 찾았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토이 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만큼 바비의 마지막 선택이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은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7월 19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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