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쇼박스 |
같은 재료를 썼지만 맛은 다르다. ‘비공식작전’의 김성훈 감독은 비슷한 소재와 형식 등으로 유사성을 지닌 ‘모가디슈’ ‘교섭’과의 차이에 대해 재료가 같아도 셰프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같은 토마토 파스타여도, 결과물의 퀄리티와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다를뿐더러 집에서 엄마가 만든 것과 식당에서 셰프가 만든 것, 그리고 인스턴트 제품의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비공식작전’은? 익숙한 인스턴트의 맛이지만 제법 감칠맛 나고 맛있다.
‘비공식작전’은 실종되었다 생존 신호를 알려온 외교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 베이루트로 떠난 외교관 이민준(하정우)과 현지에서 그와 만나 조력하게 되는 택시기사 김판수(주지훈)의 버디 액션물이다. 1986년, 무장괴한에게 납치되었다 21개월 뒤 생환한 도재승 서기관의 실화를 모티프로 삼았으나 피랍과 생환이라는 시작과 끝을 제외하곤 모두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웠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것도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은 ‘모가디슈’ ‘교섭’과 같다.
그러나 ‘모가디슈’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지닌 한국인의 동포애를 자극했고, ‘교섭’이 사람의 목숨은 살려야 한다는 인류애와 재외국민 보호라는 외교관의 사명감에 기댔다면, ‘비공식작전’은 현실적이고 속물적이어서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목표를 지닌 두 남자를 내세워 빠르게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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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7년, 이민준은 20개월 전 실종된 오재석(임형국) 서기관의 생존 구조 신호가 담긴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중동과에서 5년째 근무 중이지만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같은 일명 성골 라인과는 거리가 먼 민준은 3기수 아래 후배에게 구두로 약속받았던 런던 주재원 자리를 빼앗겨 낙담한 상태. 가진 거라곤 배짱뿐인 민준은 이 전화로 기회 삼아 뉴욕 주재원 자리를 걸고 실종된 동료를 구출하는 비공식작전에 자원한다. 임무에 자원하기 전 흥정을 시도하는 민준에게 선배 외교관(박혁권)은 사람 목숨을 두고 흥정하냐고 퉁박을 주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저론’이 팽배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동포애나 사명감보다는 훨씬 와닿는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어쩌다 보니 현지에서 이민준과 함께하게 된 베이루트 유일의 한국인 택시기사 김판수 또한 마찬가지. 현지 사정에 훤하지만 어딘지 사기꾼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판수도 동포애나 인류애보다는 팔랑거리는 달러 지폐와 미국 비자를 좇아 민준의 여정에 동참하는 인물이다.
‘비공식작전’은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목표를 좇는 이 두 남자가 어떤 각고의 상황을 겪으며 어떤 감정의 변모를 겪는지를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동료를 구해낼 몸값을 지니고 베이루트에 당도한 민준은 거액의 몸값을 노리는 공항경비대와 무장 갱단의 빗발치는 총알 세례에서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니 두 남자 사이에 끈끈한 ‘케미’가 발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을 달성한 하정우와 주지훈의 케미가 더해지니 믿고 보는 조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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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감정 변화와 성장을 담아내는 감칠맛 나는 액션도 볼거리. 지형지물을 활용한 다채로운 액션 시퀀스, 낯선 이국의 골목골목을 질주하는 카 체이싱 액션은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것이 하정우-주지훈 버전의 ‘김치맛’ 감도는 액션이라 재미나다. 물론 책상물림 외교관인 민준이나 택시기사에 불과한 판수가 에단 헌트나 제이슨 본 같은 어마무시한 액션을 선보일 리 만무하다. ‘끝까지 간다’ ‘터널’ ‘킹덤’ 등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할리우드의 압도적인 대규모 액션 대신 골목을 질주하다가도 말 그대로 골목에 ‘낑겨 버리는’ ‘웃픈’ 모습이나 파이프에 매달리고 들개에 쫓기는 민준의 리얼한 생존 액션, 전선을 몸에 감고 동료와 자신을 살리는 와이어 액션 등 무척이나 현실적인 느낌의 액션으로 긴장감과 박진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위트를 부려 넣어 관객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버디 액션물이지만 의외의 감정의 파고도 만날 수 있다. 무려 20개월이나 납치된 상태로 갇혀 있던 오재석 서기관을 발견하는 민준의 모습에서,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했던 민준의 인류애가 뜨거워지는 만큼 관객들의 감정도 동요시킨다. 피폐해진 상태로 온몸을 벌벌 떠는 오재석을 연기한 임형국은 분량이나 대사는 적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이 여정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도무지 피해자들에게 감정 이입이 힘들어 외교관의 사명감과 인류애에만 깃대야 했던 ‘교섭’과 달리 ‘비공식작전’은 관객과의 교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와 안기부의 알력다툼 사이 방치된 민준 일행을 구해 달라며 복도를 가득 메운 외교관 직원들의 소리없는 외침도 짧지만 감정적으로 울림이 컸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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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민준에 비해 판수의 서사가 덜하여 그의 감정 변화가 조금 당혹스럽게 느껴지고, 후반부 공항 신에서의 민준의 행위는 자칫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 있다. 라켓 휘두르는 폼으로 등장하는 안기부장 역의 김응수를 비롯해 김종수, 박혁권 등 중량감 있는 배우들의 캐릭터가 도식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화관에서 적당한 스릴과 흥분, 그리고 위트를 느끼기에 부족할 만큼은 아니다. 상업영화의 미덕을 다한다는 말이다. ‘밀수’를 시작으로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대작들이 줄지어 개봉을 기다리는 올여름이지만, ‘비공식작전’은 익숙한 맛이 가장 무섭고 통할 수 있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러닝타임 132분, 8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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