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태계일주’ |
지난주 23일 방송됐던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이날 방송에서는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로 짜인 ‘팜유 원정대’가 전남 목포를 찾아 식도락 기행을 펼친 모습과 기안84의 춘천여행 모습이 방송을 탔다. 그런데 기안84의 방송분량을 소개하던 전현무가 여타 다른 수식어 없이 바로 영상을 보자고 말해 다른 멤버들의 빈축(?)을 샀다.
분명 예능적으로 꾸며진 장면이지만 전현무는 기안84의 상승세를 경계하고 있었다.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을 수상하고 올해 2연패(?)를 노리고 있는 전현무는 상반기부터 심상치 않은 기안84의 기세를 눈치챘다. 그는 동생의 성장을 칭찬하고 응원하기는커녕 다분히 예능적으로 이를 견제하는 포지션을 잡아 영민한 두뇌회전을 선보였다. 그렇다. 전현무가 경계할 정도로 기안84의 상승세는 예사롭지 않다.
그 시작은 또 다른 MBC의 프로그램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였다. 지난해 12월 첫 방송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는 ‘나 혼자 산다’에서 오랫동안 기안84의 담당 연출자로 활약한 김지우PD가 연출로 데뷔하면서 꾸린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다. 기안84 그리고 그의 절친인 배우 이시언, 여행 크리에이터 빠니보틀이 남미의 아마존부터 우유니 사막까지 여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프로그램은 첫 시즌이 공개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다음 시즌의 제작이 결정됐다. 심지어 시즌 2 뿐 아니라 시즌 3까지 제작이 확정됐다. 내부적으로 ‘태계일주’의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높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결정이었다. 그 결정에 부응이라도 하듯 ‘태계일주’ 두 번째 시즌은 지난 11일 첫 회가 닐슨 코리아 집계로 4.7%, 2회가 5.8%의 시청률을 올렸다. 이미 5%가 넘어갔다는 것은 요즘 수치로 ‘중박’ 이상의 시청률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사진=MBC ‘태계일주’ |
화제성은 시청률에 잡히지 않는 ‘태계일주’의 열기를 증명했다. 각종 화제성 지수에서 선두에 올랐고, 더불어 여행의 핵심이자 처음이자 끝 기안84에 대한 관심도 높였다. 처음 ‘태계일주’는 ‘나 혼자 산다’의 이미지를 재탕한다는 내부와 외부의 우려를 사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나 혼자 산다’와는 선명하게 다른 노선을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태계일주’의 인기를 이야기하려면 기안84의 예능인으로서의 특질을 빼놓고 갈 수 없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방송 70년 역사가 배출한 가장 원형질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예능인 중 한 명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보통 연예인들은 그 시작이 어떻든 유명해지면 서서히 ‘사회화’돼 간다. 이를 유명세로 표현하고, 인기로 표현해도 좋다. 특히 방송에 있어 예능인은 그 시작이 개그맨 공채였든, MC였든, 유명한 비연예인이었든 간에 어느 정도 활동이 거듭되고 나면 주류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질은 처음에는 뚜렷한 개성으로 활동을 시작하지만, 점점 더 입지가 오르면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방송을 택하고, 편의를 봐주는 제작진을 만나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하긴 하지만 처음의 ‘야생성’은 사라진다. 인터넷 방송에서 말로 난장판을 만들었던 김구라가 그랬고, 거침없는 분장 개그를 선보였던 조세호(구. 양배추)가 그랬다. 처음에는 ‘명랑소녀’이기 그지없던 박경림 역시 지금은 품격이 있는 진행자가 됐다.
하지만 기안84에게서는 좀처럼 이러한 흐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여전히 혼자 살고, 괴식(?)을 해먹으며 괴상한 방식으로 머리를 자르고 빨래를 한다. 우리는 그가 여행을 떠나기 전 속옷 몇 장에 옷 몇 벌을 짐으로 싸는 모습에 놀라고, 인도 갠지스강에 그냥 들어가고 심지어 강물을 맛보는 모습에 경악하지만, 그는 이미 늘 해오던 방식의 삶이었다. 2016년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인 후, 기안84는 8년이 가까운 시간 늘 그렇게 살고 있다.
사진=MBC ‘태계일주’ |
특정한 형태로 형용되지 않는 그의 삶과 가치관은 비교적 정돈된 국내의 일상을 살 때보다 매번 예측하지 못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해외여행에서 그 특징이 배가된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널고, 거리에 구겨져 앉아 밥을 먹으며 아마존이든 갠지스강이든 일단 들어가고 본다. 그리고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섞이고, 문화나 문물을 받아들임에 있어 일체의 선입견과 편견이 없다.
이는 ‘태계일주’가 상승세를 거듭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지상파의 여행예능 그리고 유튜브의 여행예능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여행을 하지만 MBC라는 든든한 뒷배의 편집을 통해 고급스러움을 체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아티스트로서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부분도 그렇다. ‘태계일주’ 바라나시 화장터에서의 사색이나, ‘나 혼자 산다’ 춘천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훔치는 그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든 정해지지 않는 유형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안겨다 준다.
2017년 박나래와의 베스트 커플상을 시작으로 기안84는 2018년 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우수상, 2021년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는 분명 ‘나 혼자 산다’만의 성과이므로 ‘태계일주’의 성과가 반영되지 않았다. 그가 바라나시의 한 예식장에서 춤을 추던 모습을 보인 ‘태계일주’ 지난 25일 방송에서 하도 웃다 화가 난 한 시청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금 MBC에 연예대상이 있다면 기안84에게 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023년 6월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능의 길을 걸어온 기안84의 ‘대세론’이 확산되는 순간이다.
가장 정제되지 않은 모습으로, 그리고 가장 사회화되지 않는 그만의 모습으로 기안84는 방송인으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다. 우리는 좀처럼 그에게 기성방송인으로서의 세련됨을 기대하지 않으며, 그 역시 그럴 생각이 없다.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다. ‘날 것’ ‘진짜’가 각광받는 이 시대, 기안84의 대세론은 정말 진짜를 원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으로 점점 굳건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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