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역으로 14년 만에 영화 데뷔…”대본 보기도 전 캐스팅 수락”
“믿어준 박훈정 감독에 감사…저를 돌아볼 수 있던 시간”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스크린에서 제 모습을 볼 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날 뻔했어요. 단점이 더 크게 보이더라고요. ‘선호야 너 왜 이렇게 했냐, 어떡하냐?’ 생각했죠. 하하.”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선호는 최근 열린 영화 데뷔작 ‘귀공자’ 시사회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009년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주로 무대 위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2017년 ‘김과장’을 통해 뒤늦게 안방극장에 데뷔했고 ‘백일의 낭군님'(2018), ‘스타트업'(2020), ‘갯마을 차차차'(2021) 등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박훈정 감독의 액션 영화 ‘귀공자’는 그가 연기를 시작하고서 14년 만에 주연한 첫 영화다.
김선호는 “지금까지 연극과 드라마를 많이 했지만, 영화가 주는 의미는 크게 다르다”면서 “(영화에 출연했다는 게) 신기하고 어색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귀공자라 불리는 킬러다. 사람을 해칠 때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툭툭 던지는 대사와 ‘폼’을 중시하는 행동은 웃음을 준다. 재밌다는 듯 가난한 필리핀 복서 마르코(강태주 분)를 사생결단 쫓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면 명품 수트가 젖을까 추격을 멈추는 식이다.
김선호는 이런 알쏭달쏭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 작품에 의외성과 코믹함을 부여한다.
그는 “귀공자는 여유로운 듯해 보이지만 엄살이 심한 사람”이라고 해석했다면서 “아픈 게 싫어서 죽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며 웃었다.
김선호는 박 감독에게서 캐릭터 설명만 얼추 듣고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본을 보기도 전이었는데 그냥 하고 싶다고 했어요. 워낙 박훈정 감독님의 팬이어서 그분과 작품을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거든요. 전 (함께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저 역시도 누군가가 ‘김선호면 같이 하고 싶지’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고요.”
그는 캐릭터 분석이 풀리지 않을 때 1시간 넘게 박 감독과 함께 산책하며 인물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장면을 두고 솔직하게 상의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김선호가 대본에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할 때까지 박 감독이 기다려줄 만큼 호흡이 착착 맞았다.
어려운 점도 있었다. 욕설이 섞인 대사를 할 때와 강도 높은 액션 장면에서다.
“욕하는 신을 찍는데 감독님께서 제 말투가 너무 호의적이라면서 어색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영상도 좀 보고 연습도 하라고 하셨어요. 제가 어떤 걸 참고하면 되냐고 여쭤봤더니, ‘내 영화 신세계 있잖아. 거기 참고할 만한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셨죠.”
육군 조교 출신인 그는 총기 액션은 능숙하게 소화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어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애를 먹었다. 자꾸만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 촬영을 거듭했다고 김선호는 떠올렸다.
그는 “워낙 감독님이 워낙 액션을 좋아하고 잘하시는 분 아니냐”며 “‘마녀’ 시리즈보다는 좀 더 깔끔하고 정돈된 ‘프로 킬러’의 모습을 연기하면 감독님께서 알아서 골라서 써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박 감독의 차기작 ‘폭군’에서도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김선호는 두 작품에서 연달아 박 감독의 선택을 받게 된 비결을 묻자 “‘귀공자’를 하며 가까워진 덕”이라면서도 “감독님이 원하는 이미지를 빠르게 그려내는 편”이라고 답했다.
김선호는 그러나 ‘귀공자’에 자칫 출연하지 못할 뻔했다 크랭크인을 앞둔 2021년 10월 그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배우 교체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박 감독은 김선호를 믿고 그대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다”고 당시를 회상한 김선호는 “(촬영까지) 미뤄진 상황이라 더 이상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도 컸다. 이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저로 인해 (곤란을 겪은) 주변 분들에게 아주 미안했다”며 “저를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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