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서 조직 중간보스 역…”주인공 홍사빈의 ‘원톱’ 영화”
“이미 성공은 많이 해봐…하고 싶은 역할 원 없이 했어요”
(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칸영화제는 너무 좋은 기회고 영광인 자리죠. 촌놈이 이런 데도 다 와보네요.”
배우 송중기가 영화 ‘화란’으로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칸에 입성한다. 이 작품은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오는 23일(현지시간)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시사회 전날인 22일 현지에서 만난 송중기는 “작품을 칸영화제에 출품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초청받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몇 달 전 헝가리에서 영화 ‘로기완’을 촬영하고 있는데 ‘화란’ 제작사 대표님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더라고요. 한국 시각으로 새벽 5시였던 때라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바로 전화를 걸었죠. ‘깐느 됐다’라는 얘기를 듣고서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슬픈 장면 연기에 집중이 안 됐어요. 하하.”
처음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만큼, 이전에 여러 차례 칸에 와봤던 아내 케이티에게서 “업계 선배로서의 조언”도 많이 구했다고 한다. 배우 출신인 케이티는 임신 9개월 차 만삭이지만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칸에 동행했다.
송중기는 “솔직히 말하면 온 신경이 곧 나올 아기한테 가 있다. 영화제 일정을 후딱 끝내고 싶은 마음”이라며 웃었다.
‘화란’은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소년 연규(홍사빈 분)가 더 위험한 세계인 조직 생활에 발을 들이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다. 송중기는 이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연기했다.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데다, 주인공이 아닌 역할을 한류스타 송중기가 맡은 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가 ‘노개런티’로 출연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세간의 궁금증은 더 커졌다.
송중기는 “마침 어두운 장르를 하고 싶었던 때에 받았던 시나리오가 ‘화란’이었다”며 “배급사 관계자가 대본을 건네면서도 ‘주인공이 아닌데 괜찮겠느냐’고 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 업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면 좋은 역할인데도 안 주는 게 있구나’ 하고 깨달았죠. 근데 전 정말 상관이 없거든요. ‘화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어요. 동시에 이 영화가 투자받을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돈 안 받고 하겠다고 했죠. 근데 이게 그렇게 화제가 될 만한 일인가요?”
그가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게 된 계기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젊은 이도(세종대왕)를 맡았을 때라고 한다. ‘성균관 스캔들’로 스타 반열에 올랐던 때였기에 당시에도 송중기의 선택에 고개를 갸웃하는 팬들이 있었다.
송중기는 “제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이라며 “할리우드 스타들도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하지 않느냐. 그게 바람직한 배우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도 한참이나 후배인 신예 홍사빈에게 “마음껏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
송중기는 “그 친구가 주인공이고, 그의 시선을 중심으로 쭉 흘러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항상 촬영 현장에서도 그런 식으로 임했어요. 홍사빈씨가 극 중에서 해야 할 역할이라든지 힘든 부분,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홍사빈 원톱 영화니까요. 그래서 홍사빈씨가 액션을 하면 저는 리액션만 했죠.”
하지만 스타 배우의 아우라가 있는 만큼 송중기도 주인공 못지않은 무게감을 보여준다.
기존에 보여줬던 착하고 밝은 이미지와 상반되는 캐릭터인 점도 송중기에게 시선을 가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기분을 거슬리게 하는 부하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조직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손톱을 뽑으려 하는 치건의 모습은 그간 송중기 작품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일부가 잘려 나간 귀와 거뭇거뭇한 얼굴, 늘어난 티셔츠 등 외양도 마찬가지다.
송중기는 “그동안 몰랐던 제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건방지게 들릴 거 같긴 한데요. 그동안 (상업적인) 성공은 너무 많이 해봐서 재밌는 것, 새로운 것도 해보고 싶었어요. ‘화란’을 만난 덕분에 숨통이 틔어졌다고 할까요. 정말 원 없이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했습니다.”
rambo@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