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박설이 기자]정경호가 연기한 최치열, 그 디테일은 작가와 감독, 그리고 배우 본인의 노력 끝에 완성됐다. 학생들이 보는 곳에서 일타강사 최치열은 완벽하지만,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의 인간 최치열은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마음이 피폐한 사람이다. 그런데 남행선(전도연 분)을 만나 입맛을 되찾고 삶의 재미도 다시 느낀다. 더불어 꽁냥꽁냥 로맨스도 펼쳐진다.
최치열과 정경호는 많이 다르다. 섭식장애와는 거리가 멀고, 최수영과 연예계 장수 커플 답게 사랑도 충만하며 상냥하다. tvN 인기 드라마 ‘일타스캔들’ 종영을 맞아 최근 서울 모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정경호는 연신 스윗하고 세심한 면모로 모든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했다.
정경호는 “2023년 첫 드라마이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랐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고 종영 소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결말에 대해서는 “따뜻했다”고 말했다.
“전도연과 매 순간이 영광”
‘슬기로운 의사생활’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일타스캔들’, 하지만 정경호는 이처럼 드라마가 성공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그는 “주변에서 재미있다는 연락을 유난히 많이 받은 작품이다. 오랜만에 가족적이고 달달한 로맨스를 했다. 사실 (로맨스가)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일타강사라는 새로운 설정과 그 일타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의 로맨스라는 게 신선했다. 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게 (시청자의 눈에) 보이지 않았나 싶다”라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이어 정경호는 “(작품을 시작할 때)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잘 안 하지 않겠나. 잘될 거라는 착각 속에 시작한다. (‘일타스캔들’을) 시작할 때도 희망적이었고 기대도 많았다”라면서 “오랜만에 전도연 선배님의 밝은 연기 기대한 시청자도 많았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일타스캔들’은 전도연이 오랜만에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돌아온 작품이다. 정경호 역시 전도연의 복귀를 바랐던 1인이었다. 그는 “전도연 선배님과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히 내가 선택을 하고 안 하고의 부분이 아니었다. 제게도 좋은 기회였다”면서 “전도연 선배님과 같이 하는데 안 좋을 수가 있나? 영광스러운 작업이었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너무 좋았던 나머지, 전도연과 투샷인 촬영분을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며 한번씩 돌려보곤 했다는 정경호는 “동경해왔고 좋아했고, 존경하는 사람과 연기하는 자체가 영광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타 끝까지 너무 좋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도연과 ‘글로리’한 순간의 연속, 정경호는 왜 자신이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보며 연신 감격하는지 생각했다. 그는 “20년 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장르나 OTT 등 많은 변화가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해왔는데, 전도연 선배님을 보며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강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은 농담 삼아 ‘난 정체돼 있다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주는) 모두의 가슴에 기억되는 울림, 호흡이 큰 강점이다”라고 짚었다.
전도연을 보며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 보게 된 정경호는 “지난 10년 동안 예민하고 까칠한 역할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니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TV에서 최치열을 보는 순간 과거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슬의생’의) 김준환과 최치열의 예민함이 다르더라. 나름 단단해졌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했더라. 전도연 선배님도 30년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나. 제 지난 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도연 선배님 연기를 보며 감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나는 머리로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지만 억지로 표현할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전도연 선배님을 보면 어느 순간 행선이가 돼있었다. 많은 걸 배웠다”라도 전도연의 연기를 보며 깨닫게 된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도연의 부지런한 모습도 정경호에게는 의외였다. 그는 “저도 현장에 30분 전에 나가는 스타일인데 선배님도 못지않게 일찍 오시고, 현장을 즐기신다. 저도 대본 외우는 데 자부심이 있는 편인데 선배님은 대본을 안 들고 계시더라”라면서 “그 정도 연차면 편하게 하실 줄 알았는데, 늘 카메라가 어렵다고 하고, 긴장하는 모습들이 신기했다”라고 전했다.
“판서 안 써져 짜증…루트 쓰는 법? 대본에 있었다”
정경호의 실제 일타강사 같은 연기도 ‘일타스캔들’의 인기를 견인했던 관전 포인트였다. ‘저런 쌤 실제로 있을 것 같아’라는 평가를 받은 데는 정경호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습한 판서 연기도 주효했다. 그리고 정경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허술한 ‘하찮미’도.
그는 “직업적으로는 최고지만 밥도 못 먹고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사람인데, 감독, 작가님과 얘기하며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이 뭘지 생각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하찮미’를 첨가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 했다. 대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나다움을 많이 살렸다”라고 최치열 연기의 포인트를 전했다.
일타강사라는 직업 자체는 정경호에게 너무도 생소했다. “일타라는 단어도 몰랐고 이런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수학은 정말 0도 몰랐다”는 정경호는 일타강사의 강의를 보며 공부하고 준비했다. 그는 실제 수학 일타강사인 안가람 강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정경호는 “선생님 학원에 가서 수업도 들어보고, 수업 끝나고 얘기도 나줬다. 수학이 뭔지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극중 강의가 12문제 정도 나오는데 공식을 외웠다”라고 연기 준비 과정을 전했다.
가장 까다로웠던 건 판서였다. 최치열과 달리 평소 잘 먹고 스트레스도 잘 받지 않는다는 그가 이 드라마를 하면서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이었다고. “정신병 걸릴 정도”였다고 표현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판서, 그는 “안 써지니 짜증이 났다. 계속 쓰며 연습했다. 칠판도 사서 집에서 연습하고, 안가람 선생님 퇴근하면 술 사주면서 집에서 연습했다. 어깨도 너무 아프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판서 속 디테일은 모두 준비된 것들이었다. 극중 수아(강나언 분)가 “이거 치열쌤 판서인데”라고 알아보는 장면이 있을 정도의, 최치열만의 시그니처가 있어야 했다. 정경호는 “리미트, 숫자 쓰는 법 등 처음부터 정해놓고 했다”고 밝혔다. 독특한 루트 쓰는 법에 대해서도 “루트 쓰는 방향도 대본에 있었다”라고 말해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일타강사를 연기하며 정경호는 이 직업이 연예인의 삶과도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 누군지 몰라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만의 삶이 있더라. 엄마들 카페 같은 세계도 그렇고. 연예인과 똑같더라. 늘 가십의 대상이다”라면서 “연예인 후기 찾아보듯 선생님들도 수업 끝나고 바로 후기를 본다. ‘말이 빨랐다’ ‘어미가 내려갔는데 기분 안 좋은 일 있냐’ 등. (일타강사는) 개인 시간이 없더라. 유일하게 하는 게 학생들 수학 문제 연구고, 돈이 쌓여도 돈 쓸 데 없고 휴가도 없다. 안가람 선생님에게 ‘뭐가 행복해?’라고 물의니 ‘강의할 때 학생들이 끄덕일 때’라고 하더라”라고 실제 일타강사의 삶에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도시락이요? 정말 맛있었죠!”
섭식장애를 앓다가 행선의 도시락으로 입맛이 돌아온 최치열의 먹방은 참 쫄깃하다. 도시락의 맛은 실제로 어땠을까? 정경호는 “조리팀이 (요리를) 너무 잘한다. 청주 반찬가게 세트에서 실제로 조리를 하고 반찬도 진열했는데 늘 콩조림 같은 반찬을 싸왔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후기를 전했다.
맛있는 밥만큼 현장에서 함께한 배우들, 살아있는 캐릭터들도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정경호는 “오의식과는 친구라 호흡은 말할 필요 없이 재미있었고, 신재하와는 ‘슬빵’에서 같이 했었기에, 귀여웠다”라고 인연이 있는 배우들과의 연기에 만족했다. 인상 깊었던 배우는 장영남. 정경호는 “강직하고 우직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면서 힘있게 연기하는 게 놀라웠다”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귀여웠다며 장영남의 반전 매력을 귀띔했다.
극중 남행선의 딸이자 조카인 남해이를 연기한 노윤서를 보며 정경호는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어쩜 저리 연기를 잘하지 생각했다. 이제 겨우 세 작품째인데 어떻게 저렇게 다 알지? 나는 저 나이때 저렇게 못 했는데”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노윤서가 정말 기대된다. 정말 부러웠다. 노윤서에게도 ‘어쩜 그렇게 잘하냐’고 직접 얘기했다. 부정은 안 한다. 요즘 애들이 그렇더라”라며 웃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인 ‘일타스캔들’에 로맨스와 스릴러가 주객전도 됐다는 반응이 방영 내내 나온 데 대한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 정경호 역시 비슷한 걸 느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행선이와 연애가 좀 짧지 않나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연애 하기 전까지가 재미있지, 하고 나면 재미 없다. 충분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좀 쉬려고요. 많이 먹고 운동도 하고”
‘일타스캔들’은 최치열의 성장기이자, 배우 정경호에게 깨달음이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보며 억지로 변화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고, 2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비슷한 캐릭터에도 변주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달하 연기했기에 이미지 변신을 욕심낼 만도 하지만 그는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기로 했다.
정경호는 “변신이 갑작스럽게는 되지 않을 거다. 개인적으로 영화 ‘보스’ 이후 쉼표를 갖고 싶다. 쉬지 않고 작품을 하면서 한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가진 것이 많고 단단해진 상태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지, 다짜고짜 쉬지 않고 하면 제자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흔 하나라는 나이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이지 않나. 지난 20년보다 지금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쉬는 동안에는 무얼 할 계획인지 묻자 “4월 말부터 많이 먹을 생각이다. 운동을 하루 두 시간 이상씩 할 거다. 그래봤자겠지만”이라며 웃었다.
정경호의 말처럼 그의 연기 경력은 곧 20년이다. 정경호는 20년 연기 생활에 있어 후회만은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는 “엊그제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일타스캔들’ 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잘할 수 있냐고 해도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이다”라고 말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많이, 최선을 다했다. 후회를 최대한 안 남기려 한다. 미련이 남기는 하겠지만”이라고 말했다.
매 순간, 매 작품 최선을 다했다는 정경호는 소처럼 일하는 배우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연기한 그가 “열심히 잘했다”고 자평할 수 있는 건, 훌륭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버티고 있어서 좋은 작품을 만났다”라고 말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재발견’이라는 얘기를 듣는 배우이기도 한 정경호는 이런 반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쉬지 않고 한 작품씩 열심히 하고 있다. 재발견이라는 말은 기분이 좋고, 더 좋은 모습,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도 생긴다”라고 말했다.
연인인 소녀시대 최수영과 11년째 열애 중인 정경호, 그런데 ‘일타스캔들’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반응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오빠 답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가까운 사이이기에 서로의 연기에 대한 피드백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대신 정경호는 “남들 연기하는 걸 보고 얘기하는 건 좋아한다. 엊그제도 ‘바빌론’을 보며 밤새 얘기했다”고 전했다. 아버지인 정을영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경호는 “가족일수록 일에 대해 얘기를 안 하게 된다. 대신 칭찬은 서로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일타스캔들’ 팀과 제주도 다녀와…빨리 회비 내세요!”
현장에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정경호는 의외로 극 I의 INFJ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동료 배우, 제작진과의 앙상블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경호는 “얼마 전에 박성웅 형이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운 우리 경호’라고 해주셨는데, 남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고 크게 노력하지는 않지만”이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
‘일타스캔들’ 역시 함께 작업한 이들이 있었기에, 정경호에게 좋은 현장으로 기억된다. 그는 “아등바등 노력을 하지 않았다. 감독님, 작가님이 놀이판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셨고 촬영 감독님도 너무나 편하게 해주셨다. 7개월 동안 판서 외에는 정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도 없이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라며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일타스캔들’ 팀과 최근 제주도에 가 밤새 얘기했다는 그는 “회비 걷어야 하는데, 빨리빨리 입금해 달라”라고 말하며 웃었다.
지나온 20년 중 어느 순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말할 정도로 후회를 싫어하는 배우 정경호, ‘일타스캔들’의 최치열 캐릭터도 최선을 다한 정경호를 만나 완성형이 됐다.
또 하나의 인생작을 만들어낸 정경호는 “20대때는 내멋에 해왔고, 군 전역 후 30대에 와서는 조금만 부진해도 이 일을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연기했다. 마흔이 돼서는 ‘기대가 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아직 한창이다”라고 바랐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tvN, 오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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