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tvN ‘서진이네’ 방송화면 |
“여기 사장님 바뀌었나?”
단골들은 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와 심지어 주방장이 같아도, 가게 주인이 바뀌면 미묘하게 달라지는 공기나 느낌적인 느낌을 말이다. 지난주 돛을 올린 tvN ‘윤식당’ 스핀오프 ‘서진이네’가 딱 그렇다. ‘연예인들이 낯선 곳에서 식당을 한다’는 배경과 정유미, 박서준 등 직원들은 여전한데 윤여정에서 이서진으로 사장이 바뀌자 반경 1km 앞부터 풍기는 냄새가 달라졌다. ‘윤식당2’ ‘윤스테이’ 출신 경력직 박서준이 출근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피력하는 이서진을 지켜보다 “내가 알던 형이 사장님이 됐다”고 뱉은 말은 번역하자면 “내가 알던 형이 사장님이 되자 변했다”로 읽을 수 있다.
‘서진이네’는 ‘윤식당’에서 이사로 활약했던 이서진이 사장으로 승진해 운영하는 식당 예능이다. 이서진을 비롯해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이 다시 뭉쳤고, 방탄소년단 뷔가 새롭게 합류했다. 식당은 멕시코의 호수 마을 바칼라르에 터를 잡았다. 가게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탄성을 부르는 유리알 같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배경을 벗삼아 내놓은 메뉴는 한국인들의 소울푸드 분식이다. 김밥부터 떡볶이, 라면, 핫도그 등 인기 K-소울푸드로 메뉴판을 채웠다. 일상적인 음식들이라 만드는 방법도 손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제법 손이 많이 간다. 분식이 소울푸드라 불리는 이유를 ‘서진이네’ 직원들의 탈탈 털리는 영혼으로 몸소 이해시킨다.
이사였던 이서진이 사장이 되면서 전체 직급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유미가 실장에서 이사로, 박서준이 과장에서 실장으로 진급했다. 최우식과 뷔는 인턴이다. 앞선 세 사람과 ‘윤스테이’를 함께한 이력이 있는 최우식은 식당 경험은 없는 탓에 다시 인턴이 됐다. ‘서진이네’ 구성원들의 각 주요 업무는 사장인 이서진이 분식집의 총 관리와 카운터를 책임지고, 정유미와 박서준이 주방(요리), 최우식이 서빙, 뷔가 설거지, 청소, 재료 손질 같은 잡일을 도맡았다.
사진출처=tvN ‘서진이네’ 방송화면 |
첫화에 등장한 바칼라르의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푸른 하늘과 옥색 빛을 띠는 호수가 한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지고, 나무들이 울창하게 줄지어 있는 길을 따라 다다른 ‘서진이네’는 개나리색 상큼한 외관으로 알록달록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배경만 보면 ‘윤식당’처럼 ‘일상 로망 판타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애초 ‘윤식당’의 탄생은 프로그램이 끝나면 휴양지로 짧게 휴가를 떠났던 나영석 PD가 “한국으로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몇 개월이라도 작은 가게라도 하면서 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던 것에서 착안된 예능이다.
그렇게 탄생한 ‘윤식당’은 휴양지에서 여유를 즐기며 적당히 벌어 먹고 사는 삶을 ‘리틀 포레스트’처럼 마음 일렁이게 하는 말랑함으로 그려냈다. 북적거리는 휴양지가 아닌 한적한 골목에 터를 잡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섬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백발을 한 70대 여사장이 ‘사장님 마음대로’라는 슬로건 아래 돈과 시간에 치이지 않고 차분하게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됐다.
허나 ‘서진이네’의 혈기왕성한 경영학도 사장은 ‘윤식당’ 사장과 반대되는 분위기만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한다. 나영석 PD가 제작발표회에서 “‘윤식당’은 힐링 프로그램이어서 잔잔한 느낌이었는데, ‘서진이네’는 생존 컬러로 바뀌었다”고 말한 그대로다. 사장이 된 이서진은 ‘윤식당’ 때부터 계승되어온 ‘사장님 마음대로’라는 슬로건을 수익 창출을 위한 욕망으로 발현시킨다. 메뉴 가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부터 조금이나라도 가격을 올리기 위해 눈을 번뜩인다.
사진출처=tvN ‘서진이네’ 방송화면 |
가게 정식 오픈 전에 시뮬레이션을 해보고는 “7시 오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6시 30분 오픈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빨리빨리 진행하자”라며 직원들을 채근하고, 개업날 들쭉날쭉한 손님을 지켜보며 주름진 미간으로 시시각각 요동치는 마음을 드러낸다. 정유미는 김밥이 터질 때마다 이서진의 눈치를 살피며 몰래 사태를 수습하려 고군분투한다. 박서준은 윤사장님 밑에서 일할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피로한 얼굴로 높은 업무 강도를 보여준다. 꽤나 걸죽한 핫도그 반죽을 휘젓는 팔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다.
촬영 직전 설레는 마음으로 요리와 스페인어 레슨까지 받은 뷔는 바칼라르에 도착하자마자 상실을 겪는다. 연공서열을 강조하며 차없이 다른 직원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라는 이사장의 말에 “이건 악몽이야”를 외치기에 이른다.
‘서진이네’는 ‘윤식당’의 기본 설정을 가져왔을 뿐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더이상 힐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힐링이 존재하던 자리엔 강도 높은 노동이 대체됐다. 사장이 되더니 달라진 ‘아는형’ 겸 사장의 야망과, 그런 사장을 지켜보는 가재눈과 불만 가득한 입들이 독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매운 맛으로 노선을 새로 탄 ‘서진이네’도 ‘윤식당’처럼 맛집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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