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남 작가 신작에서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힌 ‘흙수저’ 역
‘금수저’ 한바다 역 홍수현…”불륜 추궁 장면에서 A4 6장 독백 NG 없이 소화”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이승미 인턴기자 = “은강이는 참고 참다가 한계에 다다라서야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예요. 은강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에 에워싸여서 한동안 밝은 모습을 잃기도 했죠.”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서지혜는 “연기하면서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일부러 귀여운 강아지 영상들을 찾아보며 일상의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지혜가 연기한 조은강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비굴할 정도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캐릭터다.
이십년지기 친구 한바다(홍수현)의 심부름을 해주며 그의 가족들까지 살뜰하게 챙기지만, 내면을 갉아먹는 피해의식과 열등감 때문에 결국 삐뚤어진 방식으로 욕망을 표출한다.
마음을 품고 있던 한바다의 남편 고차원(이상우)을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고, 한바다의 보석 디자인을 몰래 유출하기까지 한다.
서지혜는 이런 조은강을 두고 “그를 착하거나 나쁜 여자로 굳이 정의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시기, 질투 등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겉으로 끄집어내느냐 않느냐의 문제죠.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감정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불륜 커플만 4쌍이 등장하는 ‘빨간풍선’은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지만, 극본을 맡은 문영남 작가 특유의 ‘과장된 리얼리티’ 작법이 잘 어우러지면서 보는 재미를 살렸다는 평을 받는다.
서지혜는 “문 작가님이 무섭고, 굉장히 카리스마 있다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면 배우에 대한 배려심과 애정이 굉장하신 분”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문 작가님의 드라마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유를 알겠더라”면서 “사소한 부분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대본을 써주셨다”고 강조했다.
“은강이는 속에 품은 나쁜 마음을 야금야금 드러내야 하니까 수위 조절이 되게 힘들더라고요.”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은 불륜 사실을 알게 된 한바다(홍수현 분)가 둘에게 악에 받친 독설을 퍼붓는 장면이다.
한바다의 독백만으로 약 12분에 달하는 이 장면의 대본은 A4 용지로 6장. 긴 대사를 NG 없이 단 한번에 소화해냈다는 홍수현은 당시 현장에서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손뼉 쳐주셨어요”라고 답하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홍수현은 “20년이 넘는 연기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긴 대사는 해본 적 없었다”며 “이걸 해내고 나니까 다른 것도 쉽게 소화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긴 대사를 외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게 힘들었어요. 감정만 되면 대사는 쭉 나오기 때문에, 쏟아지는 감정을 절제하는 연습을 반복했죠.”
드라마에서 홍수현은 잘나가는 보석 디자이너 한바다를 연기했다. 부잣집 딸로 부족함 없이 자라서 베풀기도 잘하지만,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들이 ‘흙수저’인 단짝 친구 조은강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홍수현은 “한바다가 잘못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의도는 순수한 친구”라며 “조은강을 친구로서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꼈다”고 밝혔다.
이어 “환경이 안 좋으면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조은강이라는 캐릭터가 개인적으로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1999년 SBS 드라마 ‘고스트’로 데뷔한 홍수현은 드라마 ‘대조영'(2006), ‘공주의 남자'(2011),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 등으로 얼굴을 알려 사극에서 더 익숙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빨간 풍선’은 제가 이제껏 해온 작품 중에서도 난도가 높아서, 어려운 걸 해냈다는 성취감이 드는 작품”이라고 했다.
“문 선생님 대본 안에는 정답과 해설이 다 들어있어요. 마침표 하나, 느낌표 하나에도 다 뜻이 있어서 돌아보니 오히려 캐릭터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 자체는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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