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수연 기자] 2022년은 걸그룹의 해였다.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는 데뷔와 동시에 4세대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이들 모두 K팝 산업 바깥에서 스토리텔러를 데려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종업계가 아닌 밖에서 그룹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세계관’을 만들어줄 인력을 데려온 것이다. 아이브는 정세랑과 작업했고 르세라핌은 김초엽, 그리고 뉴진스는 돌고래유괴단과 협업했다.
K팝 아이돌이 여러 앨범과 곡에 걸쳐 공통된 이야기를 갖는 것을 ‘세계관’이라고 한다. 세계관은 2012년 데뷔한 엑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K팝 아이돌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됐다.
아이브는 지난해 8월 싱글 ‘애프터 라이크’ 발매 전 정세랑 작가를 모셔왔다. 정세랑 작가는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피프티 피플’, ‘지구에서 한아뿐’ 등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아이브 서머 필름’으로 공개된 영상에서는 아이브의 멤버들이 푸른 여름을 배경으로 독백을 이어간다.
“너랑 달리면 다리에 부드러운 꽃잎이 스쳐. 날카로운 풀들도.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아. 너랑 있으면 여름이 완전 달라. 잊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 우리 여섯의 여름을”
정세랑 작가 특유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아이브의 싱그러운 여름을 표현했다.
아이브의 세계관에서는 솔직하고 주체적인 사랑이 주요 키워드다. 아이브 데뷔곡 ‘일레븐’에서는 ’10점 만점에 11점’을 주고 ‘한 칸 더 채워’지는 사랑으로 너와 나 모두를 사랑하게 되는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2022년 메가히트곡 ‘러브 다이브’는 ‘숨 참고 빠져드는’ 나르시스틱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이브 서머 필름’이 공개된 후 발매된 ‘애프터 라이크’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확신에 찬 사랑을 노래한다.
이러한 아이브의 세계관을 증축하고 부드럽게 연결시켜줄 스토리텔러로서 정세랑이 나선 것이다.
아이브는 데뷔 이래 발매한 세 곡 모두 히트 시키면서 명실상부 4세대 대표 아이돌로 올라섰다. 특히 ‘러브 다이브’로는 ‘멜론 뮤직 어워드’, ‘마마’,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골든디스크어워즈’, ‘서울가요대상’ 등 유수의 시상식과 차트에서 2022년 올해의 곡으로 선정됐다.
르세라핌은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내세운다. 르세라핌은 네이버 웹툰 및 웹 소설을 통해 세계관인 ‘크림슨 하트’를 연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매한 미니 2집 ‘안티프래자일’ 초판본 한정 부록으로 김초엽 작가가 쓴 ‘크림슨 하트’ 프롤로그가 포함되어 있었다. 김초엽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등 떠오르는 SF 소설을 쓴 인물이다.
‘크림슨 하트’는 SF 장르로 ‘푸른 반딧불이’로 인해 폭주하는 마법의 땅 언노운, 그런 마법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통제도시 레퓨지아를 배경으로 한다. 레퓨지아에서 완벽한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며 살아가던 소녀들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의문의 낡은 책과 붉은 목걸이를 발견하고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호기심에 이끌려 아무도 넘지 않았던 장벽을 넘어 도시 밖으로 나간다. 소녀들은 미지의 땅 언노운을 모험하면서 레퓨지아의 비밀과 푸른 반딧불이의 진실을 마주한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각각 담당하는 멤버가 있다. 세나 역의 사쿠라, 조안 역의 김채원, 유리나 역의 허윤진, 다비 역의 카즈하, 루이샤 역의 홍은채다.
‘크림슨 하트’의 대표적 구호인 ‘혼자 하면 방황이지만 함께하면 모험이 된다’를 통해 알 수 있듯 르세라핌은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음악적 메시지로 활동하고 있다. 데뷔곡 ‘피어리스’는 제목부터 가사까지 겁 없이 비상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후속곡 ‘안티프래자일’ 또한 깨질수록 단단해진다는 의미로 가사에 각 멤버의 이야기를 담아 인상을 남겼다.
르세라핌은 데뷔와 동시에 차트를 석권했다. 이들은 2022년 데뷔 그룹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1억뷰를 넘긴 뮤직비디오를 2개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일본에서 화려한 데뷔 신고식을 마치면서 역대 K팝 걸그룹 일본 데뷔 음반 초동 신기록을 세우고 오리콘 파트 3개 부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뉴진스의 스토리텔링은 그 방식 자체도 독특하지만 스토리텔러도 범상치 않다. 주로 광고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돌고래유괴단이 뉴진스의 ‘디토’와 ‘OMG’ 뮤직비디오 각본 및 연출을 맡았다. 돌고래유괴단은 광고 및 영화 제작 그룹으로 깐느 국제 광고제, 뉴욕 국제 광고제 등에 입상하는 등 광고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알아주는 팀이다.
‘디토’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가상의 인물 반희수가 등장한다. 뉴진스 멤버들은 학교를 배경으로 반희수와 어울리며 추억을 쌓는다. ‘디토’ 뮤직비디오를 통해 뉴진스와 버니즈(뉴진스 팬덤명)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풀어내며 아이돌과 팬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OMG’의 뮤직비디오는 뉴진스 멤버들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각자 자신의 역할을 착각하는데, 하니는 아이폰, 다니엘은 아이돌, 민지는 정신과 의사, 해린은 고양이, 혜인은 고양이라고 자신을 생각한다.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와의 간극을 정신 병동 내 이야기로 그려내며 아이돌이 느낄 수 있는 위험과 고충을 털어놓는다.
뉴진스는 데뷔하자마자 ‘어텐션’, ‘하입보이’ 등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주목받았다. 멜론과 벅스 등 국내 주요 차트 상위권을 뉴진스가 독식하고 있으며 빌보드와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보이고 있다.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 세 그룹 모두 스토리텔링 방식이나 스토리텔러는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관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기존 K팝의 스토리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 작가 혹은 광고 제작팀과 협업하여 그룹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4세대 걸그룹의 세계관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전까지 주로 보이그룹의 전략이었던 세계관이 이제는 걸그룹까지 기용하는 전략이 됐다는 것이다. 또한 걸그룹 멤버들이 주체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점에서 대중이 걸그룹에게 원하는 이미지도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세계관 대로라면 세 그룹은 이제 예열을 마쳤다. 예열만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흔들었던 세 그룹이 올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글로벌 팬심을 달굴지 기대가 모아진다.
이수연 기자 tndus11029@naver.com / 사진= 어도어,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쏘스뮤직, 아이브 소셜 미디어, ‘크림슨 하트’ 소셜 미디어, 네이버 웹툰 ‘크림슨 하트’, 뉴진스 ‘디토’ 뮤직비디오 캡처,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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