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배우 정해인을 마주하자면, 어디선가 따스함이 차오른다. 특유의 선한 눈동자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연기했던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의 서준희나 MBC ‘봄밤'(2019)의 유지호가 떠올라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류의 감정이 몽글몽글 바닥부터 스며들듯 올라옴을 느낀다. 실제 인터뷰이로 만났을 때 묻어났던 좋은 감정의 여파인지, 아니면 업계에서 들리는 몇몇의 미담 탓인지, 그도 아니라면 정해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오라(aura) 때문인지 출처는 불분명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비단 나 하나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사포 같은 날 것 그대로의 캐릭터를 정해인이 맡아 소화할 때, 영 익숙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연유다. 대신 배우와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태생적 괴리감은, 작품과 작중 인물로의 몰입을 돕는 역할을 한다. 낯선 것은 심적으로 불편하지만, 방어기제로 형성된 긴장감 탓인지 집중력이 높아지는 의외의 효과가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D.P.’ 속 안준호(정해인)가 인상적이고, 시청 이후 뇌리에 박힌 채 머무른 것은 이러한 영향이다. 최근 공개된 글로벌 OTT 디즈니+ 시리즈인 ‘커넥트’ 속 하동수(정해인)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에 몰아치듯 ‘커넥트’를 흡수하고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한참 후까지 정해인과 그가 연기한 하동수가 생성한 감정의 끈이 기다란 촉수처럼 감상의 조각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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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이질감을 차치하더라도 한 쪽 눈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소화해야 했던 것은 물론, 상당한 분량의 CG 촬영을 병행한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을 작품임에 분명했다. ‘사체 아트 살인마’ 수식어를 품고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마 오진섭(고경표)이라는 명징한 빌런 캐릭터에 맞서는 롤도 녹록지 않다. ‘마블 시리즈’의 슈퍼 히어로도 아닌, 오히려 보통의 사람보다 자신감이 더 결여된 지질한 인물이 바로 정해인이 소화한 하동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회라는 회차가 흘러가는 동안, 하동수는 느릿하지만 착실하고 확실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깐 1회와 6회의 하동수는, 눈빛과 말투, 손끝과 몸짓이 아주 딴판인 사람이다. 이것을 실행한 것은 촘촘하게 짜인 서사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연출, 그리고 배우 정해인이 주변 인물들과 합을 맞춰 이뤄낸 결과였다.
미안하지만 정해인은 괴짜가 분명하다. 누가 봐도 아주 쉽게 갈 수 있는 안정된 길이 보이는데, 그 경로를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나 상대적으로 험난한 가시밭의 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순하디 순한 눈과 표정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살랑살랑 간질이며, 봄날 같은 캐릭터를 쉬이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만 늦가을이나 초여름 언저리를 들추며 서성인다. 물론 덕분에 사람들은 어느 한곳에 묶여있거나 얽매이지 않은, 사계절을 자유로이 오가는 정해인을 만나볼 수 있다. 그렇게 계절을 넘나드는 연료는 온전히 정해인이 쥐어짜내는 땀과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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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매번 기대를 부른다. 스타보다는 배우가 어울리고, 지금보다는 다음이 기다려진다. 어느 작품에서든 뇌리에 짙은 잔상을 남기는데, 차기작으로 옮겨가면 빠른 시간에 새로운 인물로 거듭난다. 성격이 밝든 어둡든,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고 인간 냄새가 잔뜩 묻어나는 캐릭터 구축을 작품마다 반복한다. 이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해인이 붙들고 있는 특권 중 하나다. ‘커넥트’ 시즌2도, 당장 ‘D.P.’ 시즌2도 기다려진다. 그리고 그보다 더 완전히 새로운 작품과 생경한 인물에 투입된 정해인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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