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현실도 드라마의 세상처럼 모든 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잔혹하다. 어렵게 꼬인 문제들이 두고두고 풀리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 그래서 오소룡과 한도, 강기호 PD가 살아가는 ‘트리거’의 세상은 현실이라기보다 우리가 바라는 판타지에 가깝다.
공영 방송사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트리거의 제작진은 늘 불의의 맞선다. 사장이 직권으로 방송을 막으려고 하면, 담당 PD는 말 한마디가 모두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을 이용해 사장의 비위를 세상에 까발리는 ‘역공’을 펼친다. 이들은 행글라이더를 타고 사이비 종교 집단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침투하기도 한다. 한껏 과장한 이야기를 통해 ‘트리거’는 답답한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의 기폭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매회 새로운 에피소드를 펼치고, 동시에 새로운 사건과 갈등을 가미하는 방식의 빠른 전개를 휘몰아친 ‘트리거’는 편집실에서 일어난 제작진의 불륜 사건부터 20년 전 흔적 없이 사라진 스타의 실종에 관한 미스터리, 제자로부터 잔혹한 스토킹 피해를 입은 교사의 절규, 국회의원의 지위를 이용해 악을 악으로 막으려는 행태를 통해 보는 이들의 도파민을 한껏 자극한다. 문제는 치솟을 대로 오른 도파민을 수습하기보다 더 큰 자극을 가미하면서 서둘러 이야기의 문을 닫았다는 데 있다. 성과 폭력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의 특장기임을 과시라도 하듯, 후반부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들에 치중한다. 때문에 초반에 형성된 기대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거창하게 뿌린 떡밥을 성급하게 수습하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특히 악의 중심으로 설정된 조진만 의원(최대훈)이 아동을 대상으로 벌인 추악한 범죄를 한낱 소재로만 활용하면서 트리거 제작진이 그토록 강조했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는 그대로 휘말된다. 기대가 큰 탓일까. 시작은 거창하고, 끝은 허무하다.

● 추악한 범죄 묘사와 선정성 짙은 표현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오소룡 PD(김혜수)는 트리거 제작진을 이끄는 리더이자 동력. 프로그램을 없애려 혈안인 방송사 사장 구형태(신정근)의 공격에 맞서는 단단한 맷집을 지녔다. 오소룡의 시선은 늘 피해자의 편에 있다. 20년 전 사라진 아들을 애타게 찾는 아버지를 살피고, 어린 시절 엄마의 실수로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의 피해자를 오랫동안 돌보는 다정한 마음도 가졌다. 드라마국에서 쫓겨나 탐사 프로그램을 맡게 된 중고 신입 한도 PD(정성일)의 진심을 간파해 그의 성장을 돕고, 만년 조연출 강기호(주종혁)가 비정규직에 스펙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영진의 공격을 받자 ‘입학금을 보태줄 수 있다’면서 대학원에라도 가보지 않겠냐고 권하는 인간미도 있다.
실력과 성품을 두루 지닌 오소룡이 굳은 신념으로 부당한 일들에 맞서는 이야기가 ‘트리거’의 근간이다. 여러 소재가 교차하는 가운데 이를 하나로 묶는 사건은 차성욱 실종이다. 20년 전 재벌 2세이자, 유력한 신문사 사주의 딸인 조해원(추자현)과 사귀던 차성욱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여전히 미제로 남았다. 오소룡이 차성욱 실종 사건을 프로그램에서 다시 다루려고 하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에 얽힌 조해원과 그의 동생인 조진만, 그리고 구형태 사장의 비밀이 드라마 후반부의 주요 사건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조진만의 등장과 함께 드라마는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마약 중독자이자, 인신매매를 통한 아동 성 착취에 중독된 그는 국회의원이라는 최소한의 지위가 무색하게 추악한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로 묘사된다. 오소룡이 조진만을 무너뜨리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리지만, 그의 잔혹한 범죄를 일망타진하는 극중 트리거 제작진의 모습은 긴장감을 잃은 채 ‘예상 가능한 대로’ 쉽게 흘러간다. 결말을 향해서만 내달리는 탓일까. 고민은 사라지고, 트리거 제작진이 그토록 외친 부정에 맞서는 정의감의 목소리는 힘을 잃는다. 게다가 후반부에 치중된 조진만의 악행 묘사는 선정성 짙은 표현으로 강한 불쾌감을 준다. 메시지는 선명하지만, 시청자의 공감을 얼마나 일으켰는지 따지면 회의적이다.
시작은 좋았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너무나 다른 성향을 보이는 오소룡과 한도, 강기호가 원팀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한 1, 2회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애정할 때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그 에너지는 강력했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펼치고, 무수한 떡밥을 뿌리고, 또 빠르게 떡밥을 회수하는 데 몰두하면서 정작 중요한 ‘공감’의 힘은 무력해졌다.
12부작인 ‘트리거’는 시즌2를 예고하는 ‘열린 결말’로 지난 19일 막을 내렸다. 죽은 줄 알았던 조해원의 흔적을 발견한 트리거 제작진의 눈이 빛났다. 시즌2가 제작된다면 조진만 만큼이나 이상한 조해원을 추적하는 과정이 그려질 것으로 보이지만 후속 시리즈 가능성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연출: 유선동 / 극본: 김기량 / 출연: 김혜수, 정성일, 주종혁, 이해영, 신정근 외 / 장르: 범죄 드라마 / 공개일: 2025년1월5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시청가 / 회차 : 10부작 / 스트리밍: 디즈니+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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