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2019) 봉준호 감독. 그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 ‘미키 17’이 드디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봉준호라 가능한 독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친구 티모(스티븐 연 분)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마크 러팔로 분)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 분)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돼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잘~ 죽고, 내일 만나!”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선보이는 첫 작품으로, 2022년 발간된 에드워드 애시튼의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봉준호’다운 영화다. 2054년의 미래,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얼음 행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SF의 스펙터클한 요소보다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현실과 더 가까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로 관객을 단숨에 극 안으로 끌어당긴다. 다소 철학적이기도 하나 직관적으로 전달해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한다.
그 중심엔 주인공 ‘미키’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인간을 프린트한다’는 원작의 독특한 설정 위에 여러 변화를 더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완성했는데, 역사학자였던 미키를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오른 자영업자이자 평범하다 못해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도 없는 일종의 ‘루저’ 캐릭터로 변주하면서 그동안 본 적 없는 ‘짠내’ 폴폴 나는 SF를 창조한 것은 물론,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착하고 가여운 청년의 이야기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특유의 풍자와 유머, 그 속에 담겨 있는 심도 있고 날카로운 메시지도 여전하다. 전작을 통해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계급 문제, 동물의 생명권, 양극화 사회의 이면 등 자본주의의 병폐를 꼬집었던 그는 이번 ‘미키 17’에서도 소모품처럼 교체되는 미키를 통해 인간성을 앗아간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계급과 차별, 정치와 인간의 욕망이 작동하는 인간사회를 들여다보며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 풍자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지만 허세를 부리는 독재자 케네스 마셜과 끊임없이 남편의 귀에 조언을 속삭이는 마셜의 아내 일파 마셜은 역사 속 수많은 독재자들을 떠올리게 하며 씁쓸한 웃음을 안긴다.

봉준호 감독의 첫 로맨스이자 꽉 닫힌 해피엔딩이라는 점도 익숙함 속 새로운 재미를 완성하는 요소다. 특히 감독 인생 처음으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데 씁쓸한 여운 대신 희망적 결말을 선택한 것도 미키와 나샤의 사랑을 향한 진심 어린 응원처럼 느껴져 진한 울림을 선사한다.
로버트 패틴슨부터 나오미 애키‧스티븐 연‧토니 콜렛‧마크 러팔로 등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는 기대 포인트다. 각자의 개성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압축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줘 몰입을 높인다.
그중에서도 얼굴은 같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미키 17’과 ‘미키 18’을 완벽 소화한 로버트 패틴슨, 독재자 케네스 마셜로 분해 데뷔 후 첫 악역을 완벽히 해낸 마크 러팔로는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로 인상적인 열연을 펼치며 스크린을 압도한다.
유능한 요원이자 용감한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 역의 나오미 애키,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키의 친구 티모 역의 스티븐 연, 독재자의 아내 일파 마셜 역의 토니 콜렛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극의 다채로운 매력을 배가한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본 동료 감독이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했을 때 기뻤다”며 “미키가 여러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이 결국 파괴되지 않았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작품의 의미를 전했다. 러닝타임 137분, 오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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