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중국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가진동, 천옌시 주연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한국판 리메이크 버전이 개봉한다. 진영, 트와이스 다현이 주연을 맡고 첫 장편영화 연출에 도전한 조영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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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은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붉게 물든 2002년, 춘천을 배경으로 한다. 진우(진영)의 친구 태완(이민구), 성빈(손정혁), 병주(이승준)는 모두 빼어난 미모에 성적까지 좋은 반장 선아(다현)를 좋아한다. 오직 진우만이 선아에게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여느 로맨스가 그렇듯, 진우와 선아는 우연한 계기로 전혀 다른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공부에 좀처럼 관심이 없던 진우는 선아로 인해 성적이 오르며 인서울 대학까지 진학한다. 반면 선아는 수능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서울권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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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지역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됐지만 진우와 선아는 꾸준히 연락을 이어간다. 그러나 오랜시간 친구로 서로의 주변을 배회해온 두 사람은 진짜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엇갈리게 된다.
‘그 시절’은 대만 원작과 거의 비슷한 전개로 흘러 간다. 작은 관계성 변화도 있지만 주요 인물 설정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작 팬들에게 응원받을 수도 있지만 한국판 리메이크만의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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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원작이 90년대 대만의 향수를 곳곳에 심어 놓은 반면, 한국판은 2002년을 그저 배경 역할에 그쳤다. 그 시절 유행가도 등장하고, 지금은 보기도 힘든 폴더폰도 나오지만 2002년만의 감수성은 읽히지 않는다.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하기엔 물리적으로 현재와 큰 간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과거를 추억하는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매력이 떨어진다.
작정하고 심어 놓은 코미디한 장르도 타율이 떨어진다. 특히 관객의 성별에 따라 웃음 코드를 두고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배경이었던 원작 주인공의 감수성이 2000년대 초반을 사는 한국 고등학생으로 옮겨오면서 마찰을 일으킨다. 치기와 열정조차 구분하지 못하던 자신을 돌아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과거에 대한 미화로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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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눈에 띄는 카메오와 조연이 많은 것도 초반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신기루, 이선민이 선생님 역으로 등장하고 실제 부부인 박성웅, 신은정이 진우 부모로 나온다. 자기 역할을 십분 해내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너무 시선을 강탈하는 캐스팅이다.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조연들의 연기는 꽤나 안정적이다. 얼굴이 많이 노출되지 않은 조연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다현은 아직 설익지 않은 연기가 진영과 풋풋한 케미 완성에 도움이 됐다. 완성형 로맨스 케미보다는 시간이 경과해가며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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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남성 관객들도 몰입해서 볼 수 있는 하이틴 로맨스다. 중요한 관계성은 로맨스지만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성장기이기도 하기 때문. 특히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하는 장면들은 추억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길게 서사를 늘어 뜨리지도 않는다. 구구절절 감정을 설명하기 보다는 빠른 리듬으로 인물들의 타임라인을 쫓아간다.
한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1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02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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