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오하인(Ohain) 지방에 자리 잡은 크리스토프 게버스의 집. 콘크리트 계단은 게버스와 그의 어시스턴트들이 정원에서 직접 만들었다.
벨기에 오하인(Ohain) 지방에 자리 잡은 크리스토프 게버스의 집. 콘크리트 계단은 게버스와 그의 어시스턴트들이 정원에서 직접 만들었다.
당신의 사진집 〈Christophe Gevers〉는 벨기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게버스(1928~2007)에게 바치는 헌정판이나 다름없다. 400쪽 이상에 걸쳐 게버스가 디자인한 공간과 가구, 소품을 촬영한 사진을 빼곡하게 수록했다. 무엇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만들었나
2023년 브뤼셀 디자인 뮤지엄은 크리스토프 게버스에 대한 전시 〈‘L’architecture du de′tail’〉을 준비 중이었다. 때마침 같은 해 봄에 게버스가 디자인한 네덜란드 아파트와 벨기에 주택을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과거 그의 집과 몇몇 장소를 촬영한 적 있는데, 이번에 또 다른 공간이 부동산 매물로 나온 것이다. 게버스의 흔적이 흩어질 예정이라 주저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네덜란드 퓌흐트(Vught)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공간을 향한 그의 비전과 독창적인 가구와 조명,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영민함에 다시 감탄했다. 이후 브뤼셀 뮤지엄에 소장된 모형을 미리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너무 많더라. 이것이 이 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 이후 탐정처럼 그의 흔적을 좇았다. 게버스라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공간뿐 아니라 그의 클라이언트와 제자들을 만나 증언을 수집했다. 책을 준비하며 많은 곳을 방문했으나 가보지 못한 데가 여전히 많다.
어시스턴트 작업실이 있던 2층. 게버스의 사망 이후 집은 빈티지 컬렉터 부부의 소유가 돼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한 채 활용되고 있다.
어시스턴트 작업실이 있던 2층. 게버스의 사망 이후 집은 빈티지 컬렉터 부부의 소유가 돼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한 채 활용되고 있다.
게버스의 작업은 벨기에뿐 아니라 네덜란드·프랑스 등 유럽 전역에 분포하며, 20세기 후반의 위대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에 비해 국제 인지도가 낮은 편인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는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개인의 명예나 세속적 성공에 관심이 없었고, 주목받기보다 작업에 몰두하는 걸 즐겼다. 게버스는 집 지하에 마련한 금속 작업장과 목재 작업장에 틀어박혀 온종일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이었다. 조명을 제외한 그의 가구들이 생전에 ‘산업적’ 규모로 생산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브뤼셀 익셀(Ixelles)에 자리 잡은 아파트의 강철 벽난로. 게버스는 마시프 데 모르(Massif des Maures)에 있는 별장에도 이와 비슷한 벽난로를 만들었다.
브뤼셀 익셀(Ixelles)에 자리 잡은 아파트의 강철 벽난로. 게버스는 마시프 데 모르(Massif des Maures)에 있는 별장에도 이와 비슷한 벽난로를 만들었다.
게버스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게버스를 처음 만난 건 2002년 5월 초 그의 집에서다. 나침반에서 영감받은 테이블을 막 완성해 선보이려는 참이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곳을 촬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긴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는 이 책을 쓰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됐다. 게버스는 가구 회사에서 일하다 디자이너로 자수성가했다. 내게 본인의 업적을 나열하기보다 어떻게 학위 없는 자신이 라 캉브르(La Cambre)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담배 홀더와 같은 사소한 물건을 디자인하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목재의 종류와 그것을 조립하는 기술, 물건을 똑똑하게 만드는 작은 디테일을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테이블이 있는 주방. 의자는 1959년 게버스가 디자인한 TBA 체어.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테이블이 있는 주방. 의자는 1959년 게버스가 디자인한 TBA 체어.
클라이언트와 제자들이 말하는 게버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게버스는 클라이언트와 끈끈한 우정을 맺었다. 벨기에 외식 사업가 필리프 닐스(Philippe Niels)는 무려 열두 곳의 공간을 게버스에게 맡겼으며, 이를 통해 기능성과 미학을 모두 고려한 풍부한 공간을 완성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제자들을 만났을 때다. 30~40년이나 지나 노인이 된 제자 중 몇몇은 게버스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스승으로서 게버스의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는 디자이너 에릭 익스의 이야기였다. 라 캉브르 재학시절 익스의 최종 프로젝트는 졸업 평가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졸업식이 끝날 무렵, 게버스가 단상에 올라 “익스 씨가 내게 가르쳐준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심사 결과와 관계없이 익스의 잠재력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게버스는 익스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대해 2년 동안 함께 일했다. 제자를 향한 헌신이 대단했던 사람이다.
라 캉브르 예술학교 학생 식당. 바닥을 창문 높이까지 올려 정원과 관계를 만든 것이 포인트다. 식판 너비와 맞춘 테이블 폭, 소금이나 후추를 두는 중앙 금속 홈에서 게버스의 세심한 면모가 드러난다.
라 캉브르 예술학교 학생 식당. 바닥을 창문 높이까지 올려 정원과 관계를 만든 것이 포인트다. 식판 너비와 맞춘 테이블 폭, 소금이나 후추를 두는 중앙 금속 홈에서 게버스의 세심한 면모가 드러난다.
게버스의 공간을 방문하며 특별히 뇌리에 박힌 순간이 있다면
단연 앤트워프에 있는 파노라마 타워 19층 아파트에 갔을 때다. 1960년대에 지어진 약 20층 높이의 타워 꼭대기엔 게버스가 설계한 600m2 규모의 집도 있었는데, 수영장까지 갖춘 멋진 곳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없어졌다. 한편 19층 아파트는 놀라울 정도로 집주인이 보존을 잘하고 있었다. 도시와 항구를 향한 전망과 브루탈리즘 콘크리트 벽난로가 인상적이었으며, 주방 창가에 있는 바 테이블 너머로 앤트워프 대성당과 매혹적인 노을이 펼쳐졌다. 그 자체로 완벽한 시노그래피였다.
게버스가 디자인한 앤트워프 파노라마 타워 아파트. 스틸에 유리 상판을 더해 완성한 커피 테이블이 거실에 놓였다.
게버스가 디자인한 앤트워프 파노라마 타워 아파트. 스틸에 유리 상판을 더해 완성한 커피 테이블이 거실에 놓였다.
건축가 글렌 세스티그는 게버스를 ‘인테리어 조각가(Interior Sculptor)’로 일컬었다. 형태와 부피, 재료를 조각하고 조립해 하나의 가구에 이르도록 하며, 샤를로트 페리앙, 카를로 스카르파, 루이스 바라간, 요제프 호프만 또는 한스 판 데르 란과 같은 거장의 반열에 있다고 평가했다. 당신의 관점에서 그의 디자인은 어떤 점이 특별한가
게버스의 디자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완벽한 예술이다.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아울러 하나의 앙상블을 만들어냈고, 착상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마스터했다. 게버스의 디자인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기능성’이다. 각 요소는 아름다움을 넘어 작고 사소한 디테일까지 의도한, 기능에 대한 지능적 반응이었다. 게버스는 장인(Craftsman)이었다. 그는 목재와 금속, 플렉시글라스, 패브릭 등 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과 이를 제작하는 기계까지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조명을 좋아한다. 그가 제안하는 간접적인 빛의 유형엔 공간을 부드럽게 바꾸는 힘이 있다.
거친 콘크리트와 스틸로 마감한 대형 벽난로에서 드러나는 브루탈리즘적 면모.
거친 콘크리트와 스틸로 마감한 대형 벽난로에서 드러나는 브루탈리즘적 면모.
오늘날에도 게버스의 디자인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나
게버스의 독창성은 문 잠금장치부터 조각적인 천장에 이른다. 기능성과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 작은 사항에 대한 관심은 현대 디자인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지속 가능성과 사용자 경험, 감성적 디자인이 강조되는 현재 트렌드 속에서도 게버스의 철학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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