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와 삼베, 소창 등 전통 소재를 바탕으로 공예와 설치미술을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 온 고소미 작가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구로구 개봉동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다. 하루의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보내는 고소미는 가족의 오랜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을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 맞는 스튜디오로 만들었다. 지어진 지 수십 년 된 집에 변화를 주기 위해 외관에 나무 파사드를 더했다. “자세히 보면 1층과 2층 파사드의 밀도가 달라요. 비교적 열린 공간인 1층은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개방감을 줬고, 작업공간인 2층은 촘촘하게 처리해 외부 노출을 줄였어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쇼룸이자 손님을 맞는 공간인 1층은 다이닝 공간과 연결해 집처럼 보이게 했다. 생활하는 공간에 작업물이 들어와 자리 잡는 과정을 하나의 여정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도다. 이에 자신이 자주 작품에 사용하는 소재가 그 자체로 공간이 되도록 벽체에 한지를 발라 마무리했다. 전통 소재를 다루지만 당연한 형태로 구성하고 싶지 않아 전통 들창을 메탈 프레임으로 제작해 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완성했다. 창에 달린 커튼 역시 직접 만든 한지로 제작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 깊이를 더해주는 짙은 색감의 나무 가구와 메탈 선반, 다양한 오브제가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빛과 어우러져 따스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2층으로 향하는 길, 조적벽으로 이뤄진 계단실에 닿는 순간부터 공간이 완전히 달라진다. 먹물이 한지에 스며드는 것처럼 백색의 공간에서 거칠고 투박한 조적벽의 공간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이 집의 진정한 매력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2층에서 보내는 고소미 작가는 이곳을 디테일한 마감재보다 효율성을 중시한 곳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기존의 조적벽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염색과 건조, 재봉 등 작업 공정에 따라 방을 나눴으며, 유리문을 설치해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그가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역시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실이다.
작가는 머리가 복잡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계단에 걸터앉아 스케치를 정리하거나, 천장까지 이어지는 서재에서 책을 꺼내 읽고, 작품을 두고 각 층에서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확실한 것보다 애매모호한 정도가 좋다고 말하는 그에게 계단실은 무엇보다 소중한 장소다. “불확실한 상태로 있을 때 느껴지는 가능성 혹은 그 에너지가 저에게는 모든 영감을 불러오는 요소예요. 그런 것을 섣불리 무언가로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어느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고소미는 오늘도 작업실에 앉아 베를 짜고, 섬유를 물들이며, 작업에 몰두한 채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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