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개월 만에 스타로
쌍꺼풀로 시작된 성공 신화
1993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박명수는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개그계에 입문해 단 6개월 만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최근 “무명 시절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듯,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으며 빛난 스타였다.
박명수의 유년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받은 쌍꺼풀 수술은 그의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로 작용했다.
“쌍꺼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라며 당시를 회상한 그는 외모 변화를 계기로 무대 위에서 이승철 모창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오락부장을 맡으며 주변의 주목을 받았고, 대학 진학 대신 개그맨이라는 꿈을 선택했다.
개그맨 최초의 기록… BMW부터 60평 빌라까지
박명수가 거성의 자리에 오른 데는 그의 독특한 개그 스타일도 큰 몫을 했다. 특히 ‘호통 개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데뷔 초 외모로만 주목을 받던 그는 복식 호흡으로 내지르는 말투와 막무가내식 우기기, 얕은 지식을 뽐내는 연출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다.
또한 슬랩스틱 코미디도 그의 장기였다. 단순히 넘어지거나 구르는 몸 개그를 넘어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치 있는 상황극으로 웃음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독창적인 개그 스타일로 빠르게 인기를 얻은 그는 개그맨 최초로 BMW를 구입하고, 서울 목동의 60평 빌라를 매입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개그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에도 도전한 그는 4집 앨범까지 발매하며 가수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바다의 왕자’와 ‘탈랄라’는 인기가요 차트에 오르며 음악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무명 시절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한 주도 쉬지 않고 일했다는 박명수는 개그와 음악 모두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명수의 이야기에 누리꾼들은 “호통 개그가 비교적 흔하지 않아서 웃겼지”, “유재석에 가려져서 그렇지, 유재석만큼 대단해”, “무명 시절 없이 성공했다니 박명수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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