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은 오지만 문명은 없는 곳을 찾아서 집을 짓다. 목수와 디자이너가 지은 세모 집 #홈터뷰.
안녕하세요. 외딴 숲속에 살며 살림살이들을 수집하는 이진아(@jina.home)라고 합니다. 홈터뷰에 소개하는 이 집은 결혼 후 세 번째 집입니다. 결혼 전엔 남편이 지내던 곳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두 번째 집부터 저희의 취향과 삶의 방향을 반영해 보기 시작했어요. 남편과는 20대 초반에 건축학도와 미술학도로 만나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취향이 닮아갔어요.
저희는 캠핑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집을 떠나 자연으로 들어가곤 했어요. 가서 쉴 땐 너무 좋았지만 짐을 풀고 텐트 치고 정리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이럴 거면 자연에 집을 지어 사는 게 낫지 않나’로 의견이 모였죠. 숲속에 정착한 계기는 굉장히 단순했고, 쉬운 결정이기도 했어요. 일과 삶,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젊었을 때 실현해보자고 결심이 서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새벽 배송은 오지만 문명은 없는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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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적당히 외떨어진 곳을 찾다 발견한 곳이 파주였어요. 파주 내에서 문명과 가깝지만 문명이 없는 곳, 안전하지만 적당히 단절된 곳을 찾아다녔고요. 다소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찾다 보니 기존 주택이 아닌 땅을 선택하게 됐어요. 여러 제약이 있는 공간을 고치기보다는, 맨땅에서 시작하더라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일지 모르는 무모한 도전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집을 지을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네 가지였어요. 저희 두 사람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 반려묘들에게도 편안한 환경이어야 할 것,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집이어야 할 것, 더불어 목공 일을 하는 남편이 오롯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별개의 작업장이 있어야 할 것.
입주는 땅을 매입하고 거의 2년 만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집 지으면 늙는다고 하잖아요. 으레 그렇듯이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아 너무 힘들고 길게 느껴졌던 2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매일 봐도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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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거실 식탁 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도자기 컵에 갓 내린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창 너머 숲을 보는 시간. 매일 보는 장면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생경하게 다가와요. 계절의 색으로 물든 숲을 혼자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잔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벅찬 기분이 들거든요. 캠핑장에서 매일 아침 느꼈던 그 감정과 같아요.
핸들이 달고 싶어서 설계한 주방 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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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과 주방 사이엔 도어를 달아 공간을 분리했어요. 사실 독일 브랜드 테크노라인(Tecnoline)의 핸들을 달고 싶어서 설치한 것도 있어요. 반원 모양의 손잡이가 만나면 원형을 이루는 형태인데, 첫눈에 반했거든요. 아주 작은 요소지만 거실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
목수 남편이 손수 만든 침대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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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 설치한 짙은 블랙 컬러의 옷장과 침대 프레임은 우드워크센터(@anchitecture)를 운영하는 목수 남편이 만든 거예요. 거대한 고목에 먹을 입히는 방식으로 만든 건데,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를 좋아하는 제 요청 사항을 반영해, 독서 등과 무선 충전기가 삽입된 선반을 설치해줬어요. 제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게 만들어준 오더 메이드 프레임이라 더 애착이 가요.
사랑을 줄 수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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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과정에서 해외 사이트나 핀터레스트, 서적 등을 보며 수백장의 사진을 모으긴 했어요. 하지만 문득 우리를 위한 공간인데 ‘왜 이렇게 일처럼 접근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치 누군가에게 컨펌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거다!’하는 레퍼런스 없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다음을 정해야 하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타일 매장에서 벽돌색 타일을 보고 꽂혀서 욕실은 이 자재가 메인이 되었고요. 이 타일의 매력이 돋보여지도록 나머지 부분들을 조율하며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선택하다 보니 사진 속 결과물이 완성되었네요.
온전히 나의 취향에만 집중한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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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로 가장 큰 변화는 작년 5월 저의 취향을 담은 홈굿즈센터(@homegoodscenter.kr)를 론칭한 일이에요.
저는 공간 디자이너를 거쳐 브랜드 디자이너로 15년간 직장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브랜딩 일을 하며 늘 고민하는 가치, 개념, 타깃 등의 키워드들을 잠시 뒤로 하고 온전히 저의 취향에만 집중한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생각을 풀어내니 오히려 또렷하게 그려지더라고요. 10대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일본 문학 번역가 친구와 함께라 더 든든했고요.
홈굿즈센터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반듯하고 고른 그릇이 아닌, 한 가마에서 태어나도 저마다 다 다른 마감을 가진 내추럴한 매력의 도자기 그릇을 소개하고 있어요. 일본 생활을 오래 한 친구 덕분에 저도 일본을 자주 오가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취향이에요.
저는 I 성향이 짙은 찐 내향인이거든요? 홈굿즈센터를 통해 제가 10여 년 해온 개인 SNS 계정의 몇 배가 되는 팔로워 분들과 연결되고 취향을 기반으로 소통하게 된 점이 신기하고 벅차게 감사해요.
한편 운영하면서 느낀 어려운 점은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힘든데요. (웃음) 수입 절차 같은 낯선 분야를 배워 나가야 하는 일, 장기적으로는 고유한 취향을 더 단단하게 다져 나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 고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가는 것 같아요.
리틀 포레스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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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주방은 작은 컨테이너 작업실에 마련한 공간이에요. 제품 촬영은 주로 이곳에서 하고 있어요. 카메라는 라이카 D-LUX 7 쓰고 있고요. 라이트 룸으로 보정해 업로드하는 편입니다.
그릇을 좋아한다면 후쿠오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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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가마들과의 미팅이나 도자기 페어를 관람하러 출장을 가기 때문에 도쿄 같은 도심보다는 소도시 위주로 다니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해두고 자주 들르는 곳은 거의 없고, 보통 이름 없는 작은 식당이나 동네 카페들을 찾아갑니다.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볼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이거든요. 후쿠오카 인근의 아리타나 하사미 지역은 젊은 도자기 작가님들 공방이 많고 접근성도 좋아 그릇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둘러보시기를 추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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