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아저씨’의 명대사 “이거 방탄유리야”로 유명한 배우 김희원의 남다른 인생 역정이 화제다. 그는 지방에서 상경해 연극 무대에 섰지만,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희원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카페와 수산시장 등에서 일했고, 집세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2~3일씩 굶기도 했다.
특히 후배들의 밥 사달라는 말에도 돈이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가장 마음 아팠다고 회상하며,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내 인생이 큰일 나겠다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그는 연기를 포기하고 1999년 호주행을 선택했다. 2년간 호주에 머물며 페인트칠과 벽돌나르기 등 다양한 노동일을 했다. 처음에는 매일 다른 일을 했지만 나중에는 페인트칠 전문이 됐다고.
그러던 중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한국 연극배우들의 공연을 보게 됐고, 자신이 페인트칠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후배들을 보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포기하려고 했지만…
하지만 귀국 후에도 순탄치 않은 길이 이어졌다. 인터넷 보급으로 연극배우들에게도 팬클럽이 생기면서 캐스팅 환경이 변했고, 팬클럽이 없던 그는 대형 공연에서 소외됐다.
예술연극만을 고집하다 보니 수입도 여전히 없었다. 그는 “때려칠 수도 없는 나이였다”며 “다른 직장을 알아봤지만 35세 이하만 구하더라. 그때 내가 이미 37살이라서 연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40세에 결국 전환점이 찾아왔는데, 바로 영화 ‘아저씨’였다. 완전한 무명이었던 그에게 큰 역할이 주어졌고, 영화는 대히트했다. 그가 연기한 명대사 “이거 방탄유리야”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어른들은 아직도 나를 방탄유리라고 부르신다”며 웃었다. 최근에는 배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즈니+ 시리즈 ‘조명가게’의 연출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진정한 노력파 배우다”, “늦게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답다”, “연기 인생이 곧 인생 드라마”, “진짜 배우의 길을 걸어온 사람”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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