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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87%] ‘애니멀 킹덤’ 현실 문제 재조립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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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멀 킹덤'의 아빠 프랑수아(왼쪽)와 아들 에밀.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애니멀 킹덤’의 아빠 프랑수아(왼쪽)와 아들 에밀.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우적우적,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의 근원을 쫓아 귀를 세우지만 단서들이 제시되지 않은 탓에 혼란스럽다. 블랙아웃이 지나고 ‘애니멀 킹덤’은 첫 장면으로 운전석에 아빠 프랑수아(로망 뒤리스)와 보조석에 앉은 에밀(폴 키르셰), 강아지 알베르의 모습을 비춘다. 

이로써 관객들은 그 소리가 에밀과 강아지가 감자칩을 먹던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체된 도로 위, 자동차들이 경적 소리를 울리는 어수선한 차량 안에서 프랑수아는 “언어처럼 음식도 인간을 규정해, 그 이상이야”라며 에밀을 타박한다. 말다툼을 하다가 에밀은 차량에서 내리고, 그를 말리려고 프랑수아도 따라 내린다. 한참을 다투던 그들의 시야에는 마구 요동치는 구급차 안에서 양쪽에 날개가 달린 기괴한 모습의 인간이 튀어나온다. 이 존재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코로나 팬데믹을 연상시키는 ‘애니멀 킹덤’의 세계관 속 변이 현상을 겪는 이들은 ‘괴물’ 혹은 ‘수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영화는 이 원인 모를 질병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누가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남겨두고는, 단지 2년 전부터 도래했다고 기술한다. ‘애니멀 킹덤’의 서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유’보다는 ‘이후’다. 이미 사람들은 이 상황에 익숙해진 상태다. 마트에서 수인이 나타나도 경찰들은 늘 겪는 업무인 양 출동하고 “매장 내에서 경찰이 임무 수행 중입니다. 고객 여러분은 계산대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사무적인 음성도 들려오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의 아내이자, 에밀의 엄마인 라나 역시 변이 과정을 겪고 치료 중이다. 필사적인 프랑수아와 달리 에밀은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보호소로 가야 하는 엄마로 인해 이사를 가는 것도, 의미 없는 희망을 품는 것도 그렇다. 그러던 중 수인들을 태우고 보호소로 이동하던 차량이 전날 폭우에 의해 뒤집혀 침몰하면서 라나는 실종된다.

직접 숲속을 수색하는 프랑수아와 달리 에밀은 사춘기 소년이 겪는 시기의 질문들에 답하기도 벅차다. 파티에 참석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즐겁고, 수인들이 두렵고 죽어야 한다는 말에 엄마를 떠올리며 견디지 못하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또한 전학간 학교에서 ‘부모님은 뭐하시냐’는 여학생 니나의 질문에 ‘아빠는 요리사고, 엄마는 죽었다’는 발언으로 존재를 회피하기도 한다. 

2001년생 배우 폴 키르셰는 '애니멀 킹덤'에서 에밀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놀랍게 표현해낸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2001년생 배우 폴 키르셰는 ‘애니멀 킹덤’에서 에밀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놀랍게 표현해낸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은 완벽한가

토마스 카일리 감독은 프랑수아가 말했던 ‘인간을 규정짓는 것’은 무엇인지, 규칙은 완벽한 것인지 영화 내내 질문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오프닝처럼 이미지 없이 소리만이 지속되었을 때, 우리는 ‘누가 무엇을 씹는 것일까’라고 자연스레 질문을 연상하게 된다. 감독은 ‘에밀과 강아지가 씹었다’는 사실을 역이용해 완벽한 구분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되묻는다. 

수인들은 완전한 변이가 이뤄지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인에 가깝다. 거칠고 작은 돌기들이 솟은 문어 같은 팔, 오돌토돌한 카멜레온 같은 피부, 깃털이 달린 새의 날개를 지녔지만 대부분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괴이한 형체들이 거주할 곳은 없다. 초음파 레이더로 식별하고, 군경들은 총을 겨누며 ‘동물을 좋아합니다. 멀리 있을 때만’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이 병 자체가 공포야”라고 몸서리친다. 극히 소수인 공존을 원하는 이들은 “함께 살아야지”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애니멀 킹덤’은 단순히 변화를 지켜보는 인간만이 아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경계인의 공포에 집중한다. 카메라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움직임과 시점들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나무를 오르고, 하늘을 날면서 느끼는 감각적인 체험 역시도 전달한다. 에밀의 몸에 생긴 사소하지만 커다란 변화들은 이를 대변한다.

에밀은 체육 시간에 줄다리기를 하던 중 자신의 편이 모두 쓰러졌는데도 혼자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지고 손톱 아래에는 이상하고 뾰족한 손톱이 자라난다. 트림을 하자, 늑대처럼 하울링 소리가 나기도 하고 온몸에는 이상한 털과 등뼈의 윤곽은 튀어나오고, 작은 소리가 크게 들린다. 평소에 잘 타던 자전거 페달 역시 밟기가 힘들다. 손톱을 핀셋으로 뽑아내고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몸 곳곳을 살펴보지만 점진적으로 변이 단계가 진행 중이다.

2001년생 배우 폴 키르셰는 신체적 변화를 겪듯 몸집을 키워가는 에밀의 공포를 비언어적 표현만으로도 놀랍게 표현해낸다. 지난해 조란 부케르마 감독의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울로 온몸을 보던 에밀은 옷가지를 모두 벗고는 흔적을 모두 씻어내려는 듯이 물로 벅벅 닦고,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욕조에 몸을 웅크린다. 폴 키르셰가 그려낸, 절망적인 현실에 놓인 소년이 보호막처럼 스스로의 몸을 웅크려 무력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울컥하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상처 난 자신의 팔에 흐르는 피를 혓바닥으로 핥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느끼는 회의감이 잔뜩 묻은 폴 키르셰의 얼굴도 그렇다. 폴 키르셰는 어린 나이임에도 등뼈로 인해 움찔거리는 어깨와 4족 보행을 하는 늑대가 되어가며 바뀐 걸음걸이까지도 차츰차츰 몸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차이를 두며 ‘애니멀 킹덤’의 세계를 이질감 없이 구현한다. 사랑 앞에서 어리숙하고, 아빠 프랑수아에게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의 야성적인 시기도 잘 녹여낸다. 

영화는 아들 에밀과 아버지 프랑수아의 관계성에 대해 집중한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아들 에밀과 아버지 프랑수아의 관계성에 대해 집중한다.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 어디에도 터놓을 수 없고 견뎌내야만 하는 슬픔 

‘애니멀 킹덤’은 어둡고 눅눅한 질감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처럼 접근하기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이 관계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경계인이라는 세계관 자체를 더 확장시키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우회해서 다른 주제의식을 가져온다는 것이 재밌다. 실종된 라나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거리감은 조금씩 좁혀진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을 달리는 자동차 안, 프랑수아는 아내의 이름을 울부짖고 에밀도 점점 동화된다. 각각 라나(RANA), 엄마(MAMA)라고 부르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발음이 비슷해 하나처럼 들리며 마음이 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에밀은 자신의 변이 과정을 아빠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모두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숨기고, 오로지 숲속에서 만난 수인 픽스(톰 메르시에)에게만 마음을 연다. 오프닝에 구급차를 탈출했던 픽스를 숲속에서 만난 에밀은 동질감을 느낀다. 앞서 에밀은 픽스에 의해 물려 피가 나는데 프랑수아는 “빌어먹을 짐승 놈”이라며 무의식 중에 내뱉는다. 가족 구성원 중 아내가 수인이고 애타게 찾으면서도, 본능적으로는 ‘괴물’이라고 규정짓는 아빠를 보며 에밀은 비밀을 더 깊숙한 곳에 감춘다. 

세면대 하수구가 막혀 그 안을 확인하던 프랑수아는 동물의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에밀의 변화를 눈치챈다. 또한 잃어버렸다던 에밀의 자전거는 숲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 찾아온 자전거를 타보라고 요구하지만, 에밀은 이제 페달을 정상적으로 밟을 수 없기에 도망친다. 달려가다가 넘어진 에밀의 등 뒤에서 꼭 끌어안으며 “내가 있잖아”라며 안심시키는 프랑수아는 ‘위험한 청춘’ ‘가쵸 딜로’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무드 인디고’ 등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 로망 뒤리스의 연기로 묵직함이 느껴진다. 소리 내어 울기보다 눈물을 머금은 눈과 애써 움켜쥔 손으로 어디에도 터놓을 수 없고 견뎌내야만 하는 슬픔을 전달한다. 

적발되어 보호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에밀을 집 안에 격리시키고 증상을 감추려는 프랑수아의 태도는 언뜻 장애를 지닌 구성원이 있는 가족을 연상시킨다. ‘애니멀 킹덤’의 세계에서 수인은 모두가 말하는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으며 인간도 동물도 아니다. 보호자로서 아들을 통제하고 지키는 프랑수아와 그가 일하는 식당의 주인의 모습은 포개진다. 그 역시 변이를 겪은 동생이 보호소에 끌려가지 않도록 식당의 뒤편에 숨겨놓고,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면 멈추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이는 토마스 카일리 감독이 말하는 문제의식과도 연결된다. 앞서 “엄마가 처음 변할 때 어땠냐”는 에밀의 물음에 프랑수아는 “달라진 것뿐이야. 그대로였어. 사실상”이라고 대답한다. 수인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괴물이라는 수식으로 포획하고, 분리시키는 상황들은 현실의 명암을 떠올리게 한다. 낯설지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애니멀 킹덤’의 세계 안에는 퍼즐처럼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논해야 하는 문제들이 숨겨져있다.

“전승, 우리가 남기고 싶은 세계, 우리가 물려받고 싶은 세계, 파괴하고 싶은 세계, 새로 발견해야 할 세계에 대해 건드려보고 싶었다”는 토마스 카일리 감독은 그 교차점에 있는 ‘애니멀 킹덤’을 통해 “변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전체의 문제”를 다룬다. 후반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만나게 되는, 프랑수아와 에밀의 선택은 토마스 카일리가 꿈꾸는 또다른 세계를 짐작케한다. 제7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이다. 

감독: 토머스 카일리 / 출연 : 로망 뒤리스, 폴 키르셰 외 /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 / 개봉일: 1월22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27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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