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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예술가들의 초상

엘르 조회수  

‘Simone Rocha’(2022), Garden Rose, De Beauvoir.
‘Simone Rocha’(2022), Garden Rose, De Beauvoir.

‘Simone Rocha’(2022), Garden Rose, De Beauvoir.

마거릿 하월, 유르겐 텔러, 매기 햄블링, 클라우디아 시퍼, 존 포슨···. 다양한 아티스트의 집 또는 작업실을 방문해 그들이 선택한 꽃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작업의 출발점은
식물 초상 작업은 인물사진에 대한 대안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인간의 관점에서 식물에 접근하는 데 늘 관심이 있었다.

‘Margot Henderson’(2021), Sanguisorba, Rochelle Canteen, London.
‘Margot Henderson’(2021), Sanguisorba, Rochelle Canteen, London.

‘Margot Henderson’(2021), Sanguisorba, Rochelle Canteen, London.

‘Piet Oudolf’(2022), Meconopsis Cambrica, Hummelo, Netherlands.
‘Piet Oudolf’(2022), Meconopsis Cambrica, Hummelo, Netherlands.

‘Piet Oudolf’(2022), Meconopsis Cambrica, Hummelo, Netherlands.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섭외에 어려움은 없는지
우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어야 했고, 내 초대장을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했다. 내 작업이 모델들에게도 의미가 있었으면 해서 그들의 창작물을 보며 식물과 꽃에 관심이 있는지 짐작해 보기도 했다. 당연히 초반엔 섭외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작업물을 쌓아갈수록 작업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진행이 수월해졌다. 얼굴이나 신체를 찍는 게 아니라 좀 더 흔쾌히 응해준 것도 있다.

‘Kulapat Yantrasast’(2022), Beeblossom, Los Angeles.
‘Kulapat Yantrasast’(2022), Beeblossom, Los Angeles.

‘Kulapat Yantrasast’(2022), Beeblossom, Los Angeles.

촬영에 사용할 꽃은 어디서 공수하는 편인가
꽃은 항상 사람들의 집, 정원 또는 작업실에서 채집한다. 섭외보다 촬영 시기를 정하는 데 더 애를 먹는다. 식물이 자란 곳에서 막 가져와 작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식물의 순간성(Temporality)에 대한 존중이자, 운송 과정에서 금방 시드는 현실적 여건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화병도 모델이 선택한다. 내가 장비를 챙겨 현장에 도착하면 모든 것은 이미 결정돼 있다. 내게 이 작업은 발견과 통제를 포기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Luciano Giubbilei’(2022), Asphodelus fistulosus, Mallorca.
‘Luciano Giubbilei’(2022), Asphodelus fistulosus, Mallorca.

‘Luciano Giubbilei’(2022), Asphodelus fistulosus, Mallorca.

‘John Pawson’(2020), Garden Rose, Cotswolds.
‘John Pawson’(2020), Garden Rose, Cotswolds.

‘John Pawson’(2020), Garden Rose, Cotswolds.

사진 스튜디오가 아닌, 타인의 공간에 일일이 방문해 촬영을 진행한다. 장소의 분위기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
내게 스튜디오 작업은 의미가 없다. 그런 종류의 통제엔 관심도 없다. 내가 고수하는 방식은 ‘현장에서 고조된 감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이해에 집중돼 있다. 장소마다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대상자와 깊은 교류를 하기도 하고, 거의 없을 때도 있다. 분위기가 조화롭든 어수선하든 모든 것은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최종 결과물을 보기 전까지 그 영향은 알 수 없다. 결국 분위기는 내 작업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Yinka Ilori’(2022), Daisy, North London.
‘Yinka Ilori’(2022), Daisy, North London.

‘Yinka Ilori’(2022), Daisy, North London.

유독 특별했던 인물이나 장소가 있다면
작품을 만들 때의 기억을 서열화하지 않는다. 경험의 우위를 가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신 그 과정에서 남겨둔 메모를 소개하겠다. 매기 햄블링(Maggi Hambling)의 작업실에 갔을 때 남긴 글이다. “그가 택한 선인장과 작업실 분위기를 온전히 담는 건 불가능하다. 방 안은 온통 재현 불가능한 회색. 여러 겹의 회색 페인트로 이뤄져 있다. 바닥과 벽, 붓, 화분의 회색…. 오래된 붕대에 둘러싸인 것 같다. 모든 회색이 저마다 다르면 회색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다. 각기 다른 음영들은 빨강, 초록, 파랑, 노랑이 돼 몰입형 회색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다음은 페니 림보와 나눈 대화다. “그에게 물었다. 고립감을 느끼나요? 그가 대답했다. 내가 고립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크로커스가 피어나고, 벚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각자 꽃을 택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겠다
가족과 어린 시절, 인간관계와 같은 개인사도 있고, 미학적 기준이나 정원에서 보낸 추억도 있다. 영국 작가 아만다 할렉(Amanda Harlech)은 비숍스 플라워(Bishop’s Flower)를 보며 앤 여왕의 드레스를 이야기했다. 섬세한 레이스로 만든 소매와 칼라를 상상하며 여름밤 울타리 아래에서 요정들이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꿈을 꾸곤 했다고 말이다. “우리가 사랑했지만 이유를 몰랐던 모든 것이 결국에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비숍스 플라워가 없는 정원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쿼 바디스(Quo Vadis)의 오너 셰프 제레미 리(Jeremy Lee)는 헬레보어(Hellebore)를 꼽았다. 그의 레스토랑 정원에는 항상 헬레보어가 자라는데, 눈과 서리 사이에서 피어나는 그 꽃을 보면 늘 미소 짓게 된다더라. 더 많은 일화는 〈Portraits, As Chosen By…〉에 수록돼 있다.

‘Tom Stuart-Smith’(2022), Lomelosia cretica, Hertfordshire.
‘Tom Stuart-Smith’(2022), Lomelosia cretica, Hertfordshire.

‘Tom Stuart-Smith’(2022), Lomelosia cretica, Hertfordshire.

단색 컬러지 배경에 자연광과 필름, 전통 인화 방식을 고집한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빛과 렌즈, 장소, 꽃뿐이다. 이를 통해 피사체와 완전히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물을 분리함으로써 식물 형태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뭐랄까, 꽃과 춤추는 것 같다. 꽃은 어떨 땐 기꺼이 협조적이지만, 때론 어색해하고 거부한다. 순간에 맞는 표현을 꽃과 함께 찾아가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색을 깊게 탐구하고 나만의 공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발견한다. 필름을 쓰면 컷을 허투루 쓸 수 없으니 더 몰입하게 된다. 순간에 온전히 집중한 채 달라지기를 바라거나 통제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요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연습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이 조합돼 작품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어느 하나라도 제거하면 결과물은 힘을 잃는다.

당신 자신을 위한 꽃을 고른다면
여러 번 들었던 질문이지만, 내 대답은 줄곧 ‘없다’였다.

‘Paul Smith’(2022), Lily of the Valley, London.
‘Paul Smith’(2022), Lily of the Valley, London.

‘Paul Smith’(2022), Lily of the Valley, London.

그렇다면 꽃을 통해 당신이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앤디 워홀에게 꽃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했을 거다. 물론 그는 내 질문을 뒤집었을 것이고. 나는 그 반응을 마냥 즐거워했겠지(웃음).

‘Claudia Schiffer’(2022), Hydrangea ‘Annabelle’, Oxfordshire.
‘Claudia Schiffer’(2022), Hydrangea ‘Annabelle’, Oxfordshire.

‘Claudia Schiffer’(2022), Hydrangea ‘Annabelle’, Oxfordshire.

현재 케이트 프렌드가 향하는 곳은
내년 4월 런던의 린지 잉그램 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린다. 마찬가지로 꽃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지만 주제는 완전히 다르다. 꽃을 찾기 위해 유럽 남부 지역을 돌아다녔다. 일종의 순례이자 개인적인 오디세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는 나에게 통행권이고 이동수단이며, 스승이자 동반자다. 카메라는 내 관심사로 향하는 길을 찾고, 그 길을 이해하고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요즘같이 산만해지기 쉬울 때 내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이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도록, 순간의 감각과 장면을 알아차리고 기억할 수 있도록.

엘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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