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시 도우미는 H.O.T.의 토니 오빠였다. 토니라고 썼다가 결국 정정할 만큼 토니 오빠를 좋아했던 당시의 내 마음은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하나의 성역이 돼 어른이 된 나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부산에 사는 H.O.T. 팬인 나는 콘서트 한 번 가기 어려웠고, 적은 용돈으로는CD 하나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 선물 하나 변변히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니 오빠가 “우리 덕분에 성적이 올랐다고 성적표 보내주는 팬이 가장 좋다”고 인터뷰하는 걸 듣고 성적표를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지금이야 입시지상주의 한국을 살아가는 팬들에게 너무 가혹한 코멘트라는 걸 감지했지만, 당시에는 학생 팬에 대한 아이돌의 전형적인 응원 멘트였다.
최애에게 성적표와 상장을 보낸 덕분에 어린 시절 학교에서 따낸 모든 성과는 SM엔터테인먼트로 발송되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사랑을 원동력으로 뭔가를 해낸 감각만은 선명히 남았다. 하지만 나는 항상 ‘빠순이’라 불렸다. 빠순이는 ‘오빠 오빠 하는 여성’이라는 의미의 멸칭이었는데, 어원을 따지며 분노하기에 나는 너무나 빠순이였다. 내 방 전체는 H.O.T. 브로마이드(포스터가 아니다)로 도배돼 있었고, 나는 혼란으로 가득했던 10대 시절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하기 싫은 순간이 오면 방에 들어와 오빠들의 사진을 보고 큰 한숨을 쉬면서 울거나 버티거나 했다. 부산에 사는 팬에게 서울 콘서트는 티켓 이상의 큰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수능을 치르고 고3을 완주하는 목표 중 하나는 오빠들과 한 공간에, 오빠들 입장에서 내가 면봉이나 새우젓보다 작게 보이더라도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오빠들과 함께 비와 눈을 볼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것. 나에게 오빠들을 좋아하는 일은 내 정체성의 거대한 부분이었지만, 나는 팬들끼리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빠순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았다. 내 굉장한 세계를 이해하지도 못할 사람에게 이 세계를 폄하할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지난해 12월, 국회 앞을 수놓은 응원봉과 마주했을 때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나에게 커다란 용기가 필요할 때 내 최애의 상징을 쥐고 광장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시절의 나로서는 꿈꾸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응원봉을 든 팬들은 본체의 어떤 버전보다 즐겁고 강인하다. 집회에서 흘러나왔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 중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를 들을 때마다 똑같이 벅차오르는 건 그래서다. ‘두 주먹 꽉 쥐고’라는 말이 결의에 찬 심정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응원봉 꽉 쥐고’는 비록 두 주먹 대신 한 주먹이지만 그 주먹의 코어에 사랑과 연대가 더해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결의라기보다 화력에 가까워진다.
함께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을 위해 카페에 음료를 선결제하거나 핫팩을 나누는 것은 팬덤에서는 새롭지 않은 문화로, 이번에도 집회 초반부터 최애의 이름을 걸고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애 생일 카페, 커피차, 콘서트 당일의 포토 카드나 간식 나눔…. 이들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축제를 확산시킬 줄 아는 전문가 집단이다.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선 사람은 다양했지만, 집으로 빠져나갈 때 구호를 리드하는 선창을 릴레이로 이어간 건 응원봉이었다. 선창하는 문구는 같았지만 선창하던 BTS의 아미밤이 멀어지면 에스파의 스봉이, 그 소리에서 몇 발짝 더 가면 NCT의 믐뭔봄이, 뉴진스의 빙키봉이, 스트레이 키즈의 나침봉이, 데이식스의 마데워치가 이어갔다. 내가 알아볼 수 있었던 응원봉만 이 정도. 선창 응원봉 중에는 일행 없이 혼자 온 사람도 많았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라는 응원봉 홀더들은 응원봉을 쥘 때만 나오는 특유의 발성과 용기로 횃불이 됐고, 릴레이처럼 이어진 횃불은 세상을 바꾸는 화력이 됐다. 그 화력은 후회 없이 포효했다가 오늘의 그것을 다 쓰고 나면 남은 땔감과 타고 난 잿더미까지 일사불란하게 싹 수거해서 돌아간다. 그 뒷모습까지가 내가 쥔 봉을 대표한다는 걸 아는 조직력. 그야말로 ‘촛불수저’다!
내 앞에 있던 두 명의 팬은 각각 “리노야/해찬아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줄게”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고, 비슷한 문구가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얼핏 위트 있는 말 같지만 구구절절 인증되는 진심이다. 지금의 ‘빠순이’들은 그늘 속에서 사랑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회사가 아티스트를 부당하게 대하면 목소리를 내고, 사랑을 모아 최애의 이름으로 기부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아티스트마저 등질 각오로 성명을 내고 압박한다. 계엄 속에서 위협받은 일상 중에는 최애가 마음 놓고 재능을 펼칠 권리뿐 아니라, 그간 내 일상을 수놓은 사랑과 덕질을 누릴 권리도 포함돼 있다. 빠순이가 걱정 없이 ‘덕질’할 수 있는 나라 역시 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얼굴이다. 심지어 더 이상 우리는 빠순이라는 단어에 모멸을 느끼지 않은 지 오래다. 어린 여성 팬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단어를, 때로는 자조와 자부심을 담아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느덧 그 ‘빠순이’들이 됐으므로.
나라가 어두울 때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온 국민, 광장에 선 새 시대의 상징이 된 이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그대들의 최애와 ‘덕메(덕질 메이트)’들에게 영광과 평안이 언제나 함께하길 빈다. 빠순이가 세상을 구한다!
곽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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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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