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빵 드라마’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대작 드라마나 프로그램의 제작이 지연될 때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편성된 작품을 말한다. 보통 제작 시간이 부족하거나 캐스팅 문제로 인해 기대감이 낮은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런 ‘땜빵 드라마’가 오히려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역대급 명작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그런 반전의 주인공이 된 한국 드라마들을 살펴본다.
SBS 드라마 ‘추적자’는 당시 기대작이었던 작품의 편성이 불발돼 급히 편성된 땜빵 드라마다. 젊은 배우들이 없는 출연진, 부족한 사전 제작 시간 등으로 기대는 낮았다. 하지만 베테랑 배우 손현주와 김상중의 명연기, 냉혹하지만 현실을 꿰뚫는 스토리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현주는 이후 인터뷰에서 “간절함이 더 컸다”고 회상했다. 이 드라마는 22.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웰메이드 드라마로 남았다.
‘해를 품은 달’은 동명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 드라마다. 캐스팅 문제로 방영 9일 전에서야 대본 리딩을 시작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첫 회부터 1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시작했다. 주연인 김수현과 한가인의 열연, 흡입력 있는 스토리는 마지막 회에서 42.2%라는 경이로운 시청률로 이어졌다.
‘킬미힐미’는 남자 주인공이 7개의 인격을 연기해야 하는 독특한 설정 때문에 배우 캐스팅이 어려웠다. 수많은 톱스타가 출연을 거절했고, 동시간대에는 현빈 주연의 ‘하이드 지킬, 나’라는 강력한 경쟁작이 있었다. 하지만 지성과 황정음 콤비의 열연이 빛을 발하며 드라마는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지성은 2015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연기력을 증명했다.
이서진과 유이 주연의 ‘결혼계약’은 급하게 편성된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배우들의 캐스팅 조합에 의구심이 많았고, 초반 시청률도 높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스토리와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22.8%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말 드라마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일명 ‘너목들’은 원래 다른 드라마 대신 급히 편성된 작품이었다. 방영 직전까지 캐스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정물과 판타지를 결합한 독창적인 스토리와 이종석, 이보영의 열연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고 시청률 24.1%를 기록하며 당시 방영된 다른 드라마들을 압도했다.
4부작으로 방영된 ‘백희가 돌아왔다’는 단막극이라는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워졌다. 강예원과 진지희의 케미, 코믹하고 세련된 연출은 단막극으로는 이례적인 10%대 시청률을 만들어냈다. 단막극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화제성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싸인’은 법의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형 장르물로, 김은희 작가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땜빵’으로 편성이 논의됐지만, 참신한 소재와 뛰어난 연기,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시청률 25.5%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김은희 작가는 이후 인터뷰에서 “안전한 로맨틱 코미디 대신 새로운 장르를 택했기에 더 주목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8부작의 짧은 드라마로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1970년대 대구를 배경으로 한 공감 가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그들의 연기력을 인정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MBC에서 갑작스럽게 편성된 12부작 드라마로,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최민수의 코믹 연기와 예상치 못한 결말은 화제를 모았다. 시청률은 15%에 육박하며 좋은 성적을 냈고, 최민수에게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남겼다.
이 드라마들은 시작 당시 기대치가 낮았지만,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탄탄한 스토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과적으로 ‘땜빵’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으로 인정받으며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시작은 평범했지만, 끝은 모두가 기억할 성공적인 작품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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