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인천 서구 청라동 전기 승용차 화재가 발생했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 화재로 주민들이 대피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수습이 진행 중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333동과 인근 332동, 334동 주민들은 전기가 끊겨 불이 꺼진 아파트에 들어가 짐과 버릴 물건들을 챙겨 나왔다. 333동 앞에서 만난 주민 A(45)씨는 “처음 나올 때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 나왔는데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져 추가로 옷, 양말 등 짐을 챙기러 왔다”고 했다.
지난 1일 오전 해당 아파트단지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던 벤츠 전기 승용차에서 불이 나 주민들이 대피했다. 단지 정문으로 들어가니 중앙광장에 인천시와 서구가 운영하는 화재현장 통합지원본부, 자동차보험사, 청소업체 등의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대피한 주민들을 위한 임시 화장실도 설치됐다.
상·하수도 배관도 불에 타 아파트단지 전체 15개 동의 수도공급이 중단됐다. 전기·수도가 모두 끊긴 단지 주민 중 일부는 비상대피소 7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하 1층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대부분 차량이 주차장 밖으로 옮겨져 있었지만 아직 그을음과 분진이 가득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점에는 전소된 차량들이 방치돼 있었다. 차량에는 차량 제조회사, 차량번호 등을 페인트로 기록해둔 흔적이 보였다.
화재는 333동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했지만 주차장이 동별 구분없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 화재 연기가 각 동에 퍼졌고 330~334동이 가장 큰 분진피해를 입었다. 일부 동은 화재로 전기선이 타 전기 공급이 끊겼다.
333동 내부는 그을음과 분진으로 가득했다. 화재 연기가 계단을 타고 올라온 탓에 꼭대기 층인 30층에도 분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고층 주민들은 대피 당시 필요한 물건을 챙기기 어려웠다. 직접 30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올라보니 30대 남성 기준으로 15분가량 소요됐다. 짐이 있었다면 더 걸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재현장 지원본부 천막 앞에서 만난 333동 주민 박모(40)씨는 “현재 외부 대피소에서 생활 중인데 집이 고층이라 최소한의 짐 외에는 물건을 챙기지 못했다. 아까 잠시 들어가 확인했을 때는 전기가 끊겨 냉장고 안에 있는 식품들이 상한 상태였다”며 “전기는 금요일(9일)쯤 들어오고 엘리베이터는 11일이나 돼야 가동된다고 하는데 집이 고층이라 엘리베이터가 가동된 뒤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씨와 대화 중이던 노모(40)씨는 “회사 근처에서 임시 거처를 구해 생활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피소나 지인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불편이 커지고 있다. 일요일에는 정상화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일부 건설사 관계자들은 전기차 화재와 대응방안을 마련했거나 현재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DL이앤씨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건물용 전기차 화재진압 시스템’을 개발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시스템 개발 이후 문의가 종종 들어왔는데 청라 아파트 주차장 화재 이후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현대건설은 전기차 화재 특성을 고려한 설계 가이드를 적용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전기차 화재를 대비하기 위한 지하주차장 설계 기준을 정립했다. 3면 내화구조 적용, 스프링클러 기능 상향, 6면을 바라볼 수 있는 폐쇄회로(CC)TV, 열적외선 카메라 사용, 물막이판 설치, 방수기구함(질식소화포) 배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후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 등에 시스템을 적용하고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가이드라인 등을 정립해주면 그에 맞춰 설계가 이뤄지고 시공사와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아파트 건축 시 전기차 전용 구역 방화 대책 마련을 위한 설계를 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우리나라는 주거형태에서 아파트 비중이 크고 아파트는 공동 생활을 하는 구역이라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며 “아파트 건축과정에서 대비시설을 지을 수도 있지만 지하는 화재 진압에도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전기차 충전소만 지상에 마련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고 교수는 “또한 건설업계뿐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업계, 정부, 소방, 학계 등이 논의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지하주차장 화재는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중소형 소방차가 필요하고 아파트 건축과정에서 지하주차장 높이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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