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6일 “이재명 전 대표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총 138명이 검찰로부터 통신사찰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가 대규모 통신 기록을 조회했는데 여기에 야당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된 겁니다.
이에 3년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조회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수사 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조회가 다시 한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5~6일 접수받은 1차 피해 현황에 따르면 전·현직 의원을 포함해 최소 138명이 통신조회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각에서는 언론인과 주변 지인까지 합치면 조회 대상이 3000명에 이른다는 말도 나옵니다.
민주당은 곧바로 “무차별 민간인 사찰”, “윤석열식 블랙리스트”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적법한 수사 절차”라고 옹호했습니다.
검찰은 “통신 가입자 이름 등 제한적 내용을 조회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검찰이 실시한 통신조회는 ‘통신이용자정보제공’인데,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담고 있는 기록이라 문제가 없단 입장입니다.
실제로 통신이용자정보제공은 수사기관이 수사와 재판 등을 위해 통신 사업자에게 가입자의 개인 정보를 요청해 임의로 제출받는 기초 수사 수단입니다. 조회 내역이 연간 600만건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화 송수신 내역, IP 등이 담긴 ‘통신사실확인자료’와는 다릅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법원에서 혐의와 통화 내역 분석 필요성을 소명하고, 통신영장을 발부받아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논란은 3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2021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공수처는 윤 대통령과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 기자, 가족‧지인 등 다수를 상대로 통신가입자 내역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윤 후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수처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공포 사회를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계를 20세기로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국회의원에 대한 사찰은 국민에 대한 사찰이기도 하다. 이런 식이라면 일반 국민도 사찰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비판적인 반응을 남겼습니다.
민주당은 지금의 국민의힘처럼 “적법한 수사 행위”라고 옹호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 전 대표도 “법령에 의한 행위를 사찰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각 당의 유불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주장을 펼치며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이에 정치권 내에서도 제도적 개선을 통해 아예 논란의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친한(친한동훈)계’인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통신조회는 이용자 정보 공개이기 때문에 법원이 압수수색영장보다 요건을 완화해 심사할 순 있겠지만, 현재 법원을 거치지 않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당 권영세 의원 역시 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어느 정권이든 검찰 혹은 다른 수사기관들이 좀 과하게 통신조회를 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법원에 의한 통제, 영장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기초적인 가입자 정보 확인까지 영장심사를 거치면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범죄 등 대규모 범죄 수사에 있어 수사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는 가입자의 인적 사항 정도만 확인하는 것으로 영장주의를 도입하면 수사의 비효율성이 커진다”며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했을 경우 당사자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이미 여야 합의로 통과돼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이런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통신이용자정보를 수집하고도 당사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후 헌재 지적에 따라 지난해 말 전기통신사업법에 사후통지 규정이 신설됐습니다. 다만 30일 이내 통지를 원칙으로 하되, 사법 절차 진행 방해, 사생활 침해, 행정 절차 지연 등의 우려가 있으면 3개월 단위로, 최장 6개월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정권마다 반복되는 무차별적 통신조회 논란을 줄이기 위해선 법 해석을 보다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사후통지를 유예하려면 검사장까지 결재를 받게 하는 등 검찰 내부에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이 합리적일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민주당이 이번 논란에서 제기한 쟁점 중 하나도 사후통지 기간입니다. 민주당은 검찰이 조회 후 7개월이 지나서야 조회 사실을 ‘늑장 통보’했다며 “4·10 총선을 고려한 검찰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우선 통신조회가 이뤄졌을 당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부장검사였던 강백신 검사를 정조준한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강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으며, 조만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청문회를 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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