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억원 상당의 횡령이 발생한 우리은행 김해지점 내엔 일반 직원이 결재권자의 컴퓨터를 사용해 대출 승인 결재를 대신하는 관행이 존재했다. 횡령을 벌인 직원 역시 이러한 관행 등을 이용해 우리은행 자체 감시 시스템을 피하고 수십회에 걸쳐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7일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우리은행 김해지점 직원 A씨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사기·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된 A씨는 2023년 7월 24일부터 올해 5월 24일까지 35회에 걸쳐 허위 대출을 일으키고 179억9000만원을 빼돌렸다.
검찰은 약 2년 동안 수십회에 걸친 횡령이 발생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우리은행 김해지점의 구멍 뚫린 내부통제 시스템을 지목했다. 은행 영업점에서 최종 대출 승인이 나려면 영업점 내 상급자의 결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김해지점은 상급자가 부재중일 때, 대출 담당 직원이 상급자의 컴퓨터를 사용해 직접 대출 결재를 내리는 관행이 있었다.
영업점의 대출 결재가 승인된 이후 실제 대출금이 집행되는 과정에도 빈틈이 존재했다. 통상 영업점의 대출 승인이 떨어지면 은행 본점은 대출금을 고객의 계좌로 바로 입금한다. 그러나 영업점 은행 직원이 대출 신청 방식을 달리하면 본점에서 영업점으로 대출금이 먼저 송금된 뒤 이를 담당 직원이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
A씨는 이러한 지점 내 관행과 시스템상 허점을 이용했다. A씨는 우리은행 고객의 금융 정보를 도용해 고객이 직접 대출을 신청한 것처럼 대출 신청서를 위조한 뒤 스스로 팀장과 지점장 결재를 대신 처리했다. 이후 본점에서 대출금을 보내면 돈이 바로 고객에게 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이 나온 돈도 빼돌렸는데, 대출명의자 정보를 거짓으로 입력해 지인 계좌로 송금한 후 이를 다시 자신의 계좌로 송금해 돈을 편취했다.
위조 문서를 만드는 과정 중 A씨는 김해지점에서 이미 대출받았던 고객을 속이기도 했다. A씨는 기업대출을 받은 고객을 불러 “기존 대출 절차에 누락된 것이 있으니 도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객의 도장을 받아낸 뒤엔 거짓 대출 서류에 날인해 고객 명의로 대출을 일으켰다. 이러한 수법 등으로 명의를 도용당한 고객 수는 17명이다.
A씨의 범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담해졌다. 2023년 첫 횡령을 일으킬 당시 A씨는 1억원의 대출을 일으켰다. 두 번째 범행 때는 대출금이 4억6000만원으로 뛰었다. 올해 4월에는 10억원 상당의 대출을 두 차례나 집행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A씨는 총 179억9000만원을 빼돌렸다.
검찰은 A씨가 가상자산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2021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투자를 시작했는데 약 1년 동안 2억원가량을 잃었다. 이후 지난해 5월에 다시 가상자산 투자에 손댔으나 역시 투자에 실패했다. A씨는 투자 손실금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빼돌렸고 이를 다시 가상자산 투자에 사용했다. A씨는 빼돌린 돈 중 124억원가량을 국내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와 빗썸 계좌에 입금했다.
A씨의 범행은 우리은행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에서 이상징후를 포착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우리은행이 A씨에 소명을 요구하자 A씨는 지난 6월 10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고 6월 12일, 그를 구속했다. 창원지검은 지난달 8일, A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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