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당국은 판매도 저조하고 운용사도 버려둔 ‘좀비’ 상장지수펀드(ETF)를 정리하고자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제도를 구체화하면 과거 운용사들이 무분별하게 쏟아낸 소규모 ETF 상당수가 상장 폐지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는 ETF도 주식처럼 상장 폐지 직전에 한 몫 챙기려는 투기 수요가 몰려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말 그럴까. 직접 7월 한 달 동안 상장 폐지 예정 ETF의 주주가 돼 봤다.
기자가 택한 ETF는 규모가 50억원을 밑돈다는 이유로 지난달 24일 상장 폐지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스마트밸류’다. 이 상품은 코스피200 종목 중 시가총액 대비 저평가된 기업을 담은 ETF였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취지와 결이 비슷한 만큼 상장 폐지 직전 수요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구성종목(PDF)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기아,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주요 대기업이 담겼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ACE 스마트밸류를 선택하고 7월 한 달에 걸쳐 분할 매수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9만3635원(6주)을 투자해 9만2040원만 건졌다. 손실률로 따지면 마이너스(-) 1.70%다. 주요 PDF인 삼성전자 주가가 이 기간 8% 가까이 빠진 게 전체 손실로 이어졌다. 다만 ETF를 통해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한 덕에 손실은 2% 아래로 막을 수 있었다. 상장 폐지를 앞둔 주식과 같은 주가 널뛰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식은 상장 폐지 전 7거래일 동안(정리매매) 가격 제한 폭(±30%)이 적용되지 않는다. “흐름만 잘 타면 목돈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상장 폐지된 삼성중공우는 정리매매 기간에 단기 차익을 노린 ‘불나방’이 몰려들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196% 상승한 바 있다.
주식과 달리 ETF는 상장 폐지될 때까지 가격 제한 폭이 적용돼 -30%에서 30% 사이에서만 가격이 움직인다. 무리하게 샀다가 파는 행위를 반복하면서까지 차익을 챙기려는 수요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ETF 주가 흐름은 상장 폐지 예고 전이나 후나 별 차이가 없었다.
ACE 스마트밸류를 매수한 뒤 분위기를 보니 팔려는 투자자만 넘쳐나고 사려는 투자자는 거의 없었다. 매수자가 등장해도 이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상장 폐지 직전인 지난달 22일 ACE 스마트밸류의 호가 차이는 70원까지 벌어졌다. ETF를 팔려는 사람이 제시한 가격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은 1만5390원인데, 사려는 사람이 제시한 가격 중 가장 비싼 가격은 1만5320원이었다.
1만원 단위 ETF의 한 틱(최소 가격 변동 단위)은 5원이라, 통상 ETF는 5원마다 매수 또는 매도하려는 물량이 쌓여있다. 하지만 상장 폐지 예고 종목은 유동성공급자(LP)의 호가 제출 의무가 면제된다. 이 때문에 한 틱보다 14배 크게 가격이 벌어진 것이다. LP가 없는 ETF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가 이처럼 크게 차이가 나고 주문 가격을 잘못 입력하지 않는 이상 매수자보다 매도자가 부르는 가격이 더 높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 비싸게 사서 싸게 팔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장 폐지 이후를 노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아 보였다. 종목 자체가 퇴출당하는 게 아니어서 ETF가 상장 폐지되더라도 투자자는 상품에 담긴 종목의 주가만큼 자산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다. ETF 안에 담긴 상장사 주가가 오르면 상장 폐지 ETF에 투자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이때 주가를 계산하는 기준일은 ETF 상장 폐지 바로 다음 거래일이다.
ETF에 담긴 종목의 가치를 주가로 환산한 걸 순자산가치(NAV)라고 하는데, 사실상 NAV보다 낮은 가격에 매수하긴 어렵다. 대개 NAV보다 높은 가격에 ETF를 내놓기 때문이다. 간혹 NAV보다 낮은 가격의 물량이 있더라도 수가 많지 않다. 지난달 9일 NAV보다 17원 저렴한 매도 물량이 나오긴 했으나 5주에 불과했다. 투자금을 늘리더라도 이 방법으로는 큰 수익을 낼 수 없다.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 운용에 따른 보수와 매매 수수료를 제외하고 현금 상환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상장 폐지에 따른 시세 차익을 추구하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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