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불확실의 소용돌이에 빠진 청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MBTI와 사주에 매달린다. 하지만 국내 청년 작가 9인은 말한다. 떨어질 듯 불안하게 매달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손에 힘주고, 콧노래 한번 불러보자고 말이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이달 7일부터 11월 23일까지 ‘불안 해방 일지’를 개최한다. 국내 작가 9인 김미루, 김지영, 도유진, 백다래, 신정균, 양유연, 이예은, 이원우, 조주현의 작품 34점으로 구성된다.
이들 작가 역시 어느 한국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성인으로서 느끼는 불안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불안을 마주하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방일지를 써 내려간다.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특히 이예은 작가의 ‘무모 연작’은 다리나 높은 벽에 매달리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무모한 행위를 통해 위로를 건넨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누군가 보기에는 무모하고 무의미한 하루하루일 수 있지만, ‘이번 한 번만 더 버텨보자’, ‘이번 고비만 넘기면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으로 견디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이 작가는 직접 높은 다리에 매달린 ‘높이재기’, 추운 겨울 자신의 체온으로 건물의 실내 온도를 높이는 ‘실내 온도 높이기’, 트램펄린 위에 마늘을 쌓아 올리는 ‘마늘 옮기기’ 등의 무모한 도전을 통해 언젠가 누군가와 연대해 함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가는 냉동창고, 치즈 공장 등 각종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생활에서 느낀 고충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그는 “누군가가 저렇게 매달려 있는 상황을 봤을 때 ‘저기 매달려서 뭐 하는 거야’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는 길이나 높이를 재는 어떤 행위를 하는 게 아니겠냐”며 “‘이번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질거야라는 희망으로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한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백다래 작가는 의인화한 괴물투수로 등장한 영상 ‘인앤아웃’을 통해 청년 예술가가 느끼는 불안을 보여준다. 영상 한켠의 댓글창에는 각종 닉네임이 백 작가를 향해 악플을 달거나 응원을 남긴다. 백 작가는 투수가 삶이라는 공을 던지면, 우리는 날아오는 공에 직면한 타자라고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삶을 어떻게 버티고 존재하는지를 증명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해 35세였던 백 작가는 “예술가로서, 어른으로서, 그리고 독립적인 개체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존재로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예술가로서도 불안정하고 딸로서도 뭔가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느꼈던 한 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닉네임 엄마가 남긴 ‘항상 응원해’란 짧은 댓글은 무수한 악플 속에서도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관객들에게 준다.
김미루 작가는 무언의 소통을 통해 불안을 해방한다. 작가와 타인은 각각 한 손만을 사용해 흙덩이를 만지며 감정을 나눈다. 둘이 할 때 온전히 두 손이 되는 것이다. 언어로는 모든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퍼포먼스는 자연에서 홀로 시작됐다가, 이후 촉감을 통해 타인과 감정적인 터치가 이뤄지는 행위로 발전했다.
전시회의 막바지로 갈수록 불안의 감정은 사라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원우 작가의 ‘Your Beautiful Future’(당신의 아름다운 미래), 밤 공기(Evening Air) 등 무지갯빛 허공에 더 있는 따뜻한 문구들은 ‘정말 내 미래가 아름다울 것 같다’는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김지영 작가의 ‘싱잉 노즈’에서 흘러나오는 콧노래는 ‘불안해할 것 없어’라고 속삭인다. 김 작가가 목탄으로 그린 국수와 콧노래의 조합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일상의 행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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