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위에서 33위, 그리고 36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60여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두뇌 유출 지수(Brain Drain Index)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최근 3년(2021~2023년) 동안 연속해서 순위가 하락했다. 그 뿐만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 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인공지능(AI) 분야 인재 중 약 40%가 해외로 유출됐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로 생애 기대 소득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고 이에 따라 경쟁 심화, 사교육비 과다 지출 등 자원 배분의 왜곡이 심각하다. 저출산과 학령 인구 감소로 산업계에 진입하는 인력 자체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기존 방식으로는 이공계의 만성적 인재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국내 대신 해외에 있는 기업이나 연구소를 선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에게 적합한 일, 많은 수입과 좋은 환경, 자신의 경력 개발에 필요한 기회, 회사의 비전과 미래 등을 고려해서 더 나은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첨단산업 분야의 기술 주도권 선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지금, 훌륭한 기술 인재 확보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우리나라에 첨단분야의 인재가 모여들고,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인재 양성과 유치, 그리고 관리가 시급하다.
첫째,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다. 인류 행복에 공헌하는 공학과 과학의 가치를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체험함으로써 이공계 진로가 ‘인류에게 유익하고 자신에게 멋진 일’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확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는 130억달러를 배정해 과학기술 및 엔지니어링(STEM)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은 2017년부터 대학 입학시험 필수 과목에 물리학을 포함했고 대만은 고등학교 과정에 반도체 교육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중고생들에게 산업기술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공계에 대한 호감을 얻어가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인정받는 엔지니어들이 많아질수록 현업 연구자들의 자부심도 올라가고, 덩달아 중고생들의 이공계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질 것이다.
둘째, 경제적 처우 개선이다. 사명감만 강조해서는 인재들이 모이지 않는다. 낡은 보상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 가고 싶어 하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적절한 경제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 글로벌 기술 대기업의 마더 팩토리(핵심 생산기지)나 연구개발(R&D) 센터를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에 대한 과감한 규제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기업이 직접 인재 양성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첨단산업의 기술 변화 속도는 워낙 빨라서 대학에만 인재 양성을 맡기는 것은 부족함이 많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연구 시설 설비에 투자하면 세액 공제 혜택을 지원하듯 구직자와 재직자를 대상으로 인재 양성 및 개발에 나서는 기업에는 이에 대한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연구 연속성 보장이다. 이공계 인재들은 적극적인 도전을 장려하는 조직문화, 자율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세계 최상위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가는 이유는 꼭 고액 연봉 때문인 것은 아니다. 경력 도약이나 아이디어 실현의 기회가 열려 있고, 일·가정 양립의 문제점을 비교적 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도전적 목표 실현을 위해 단기적 성과 달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해야 한다. 석박사 과정생들을 위한 연구 활동 보조금을 현실적 수준으로 높이는 한편, 연구 에너지가 왕성한 신진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여성과 퇴직자 활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인재의 다양성 확보다. 인재 활용 측면에서 다양성 활용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례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40%가 외국 국적의 직원이다. 정부는 2030년 즈음이면 국내 이공계 대학원 신입생 수가 지금의 85%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대처하는 방법으로 여러 나라의 우수한 해외 인재들을 두루 수용하고 그들이 국내 산업계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게 애써야 한다.
특히 국내 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 교류가 꼭 필요하다. 수준 높은 외국 연구자들을 국내에 초빙하고, 국내 연구자들을 외국에 보내는 등 활발한 국제 교류와 협력을 지원해야 한다. KIAT는 올해 미국과 독일에 글로벌산업기술협력센터(GITCC)를 개소, 앞으로도 국제 공동 연구개발과 인력 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 구조가 이전의 주력 산업에서 첨단 신산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그에 따라 필요한 인재상도 바뀌고 있다. 21세기 국가들이 벌이는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게임 체인저는 사실상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방식대로 인재를 키우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라도 산업 구조, 노동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인재 양성 패러다임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 기업, 대학은 인력 공급 절벽의 어두운 현실을 큰 위기로 인식하고, 인재 양성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힘써야 한다. 기술 혁신은 결국은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bjmin@kiat.or.kr
〈필자〉 전문 과학기술인으로 시작해 국회의원, 기관장으로 선임된 인사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정책 분야까지 확장했다. 1959년생으로,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규슈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최초의 여성 유치 과학자로 입소했다. 이후 20년간 국내 원자력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과 한국원자력학회장도 역임했다. 2022년 9월부터 KIAT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성장 전략을 뒷받침할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