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소송하다 보면 감정에 먼저 호소하는 의뢰인이 많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은 사건의 본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을 수 있지만, 원고의 심경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순 있다.
하지만 법원은 감정적인 사연보다는 당연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을 중시해 판단을 내린다. 청구 원인과 요건 사실에 대한 주장·입증 없이 그저 소송이 힘들어서 눈물을 흘렸다는 원고의 읍소에는 대부분 ‘청구 기각’이라는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느 소송 당사자는 직접 부동산 관련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서면으로 남겼다. 청구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원고의 눈물’이라는 제목 아래 “육십 먹도록 법원은커녕 경찰서 근처도 안 가봤는데 법원에 오게 된 현실이 통탄하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는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서 펑펑 울다가 자식과 통화를 하다가, 또 육십 평생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내버렸다”며 억울함을 쏟아냈다. 이미 체결된 계약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으로 소송을 제기했는데도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피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처럼 원고의 눈물과 힘든 삶을 나열한 것은 그가 법원에 찾아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를 강조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할아버지도 억울하다며 법정에 나선 적 있다. 그는 양계장을 운여하며 애지중지 키운 닭들이 폐사하자, 근처 공사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음‧분진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건설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손해배상은 청구하는 쪽에서 가해 행위와 손해의 인과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죽은 닭들의 사진만 법원에 제출할 뿐이었다. 재판부는 닭의 사체만으로는 죽은 원인을 밝혀낼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할아버지는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재판부가 그저 야속했다.
그는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양계장에 와서 폐사한 닭들이 묻혀 있는 땅을 파보면, 닭들의 원이 서린 폐사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읍소했다. 그러면서 닭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느 일본 농부의 자서전 구절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할아버지의 청구를 기각하고, 건설회사가 손해배상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폐사한 뒤 상당 시간 시간이 흐른 데다 사체를 부검하더라도 폐사 원인이 무엇인지 쉽게 밝혀낼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송사할 ‘송(訟)’을 풀이하면, 시비 곡절을 다투는 모습이라고 하고 ‘공공(公公)한 말씀(言)’이 된다고도 한다. 사사로움은 배제하고 엄중한 말로 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기반을 두어 이뤄져야 하며, 판사는 이러한 증거와 사실을 검토해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보라 정오의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억울함과 죄책감은 이해하지만, 법정에서는 이런 측면만으로 판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소송은 공정성과 정의를 위한 절차로서 당연히 주장과 요건 사실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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