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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테기’ 두 줄 뜬 순간…유정 씨는 정체불명 ‘1㎝’ 알약 삼켰다

머니s 조회수  

[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서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의료계는 여전히 임신 중지 수술에 소극적이며, 일부는 진료조차 거부한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체불명의 판매자를 만나 유산 유도제 ‘미프진’을 구매한다. 가짜 약인지, 진짜 약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지름 1㎝의 알약을 입안에 털어 꾸역꾸역 삼킨다. 정부와 국회는 뒷짐 진 채 여성들의 이 같은 ‘목숨 건 유산 시도’를 관망 중이다. 은 지난 2개월간 전국 산부인과 300여 곳을 전수 조사하고, 전국 곳곳에 있는 미프진 판매자들과 구매자 여성들을 직접 만나 대한민국 임신 중지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

(서울=뉴스1) 서상혁 김예원 홍유진 장성희 기자 = 불안감이 엄습할 때 유튜브만한 도피처가 없다. 20대 대학생 김유정 씨(가명)는 휴대전화 속 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쿡쿡 쑤시던 배도, 울렁거리던 속도 무언가에 열중하니 한결 나아졌다. 그러다 벽에 걸린 시계 위로 시선을 옮겼다. 지름 1㎝ 알약 한 개, 6㎜ 알약 네 개로 구성된 유산 유도제(미프진)를 먹은 지 두 시간이 지났지만 신호는 아직이다.

복용 후 30분 내로 반응이 올 거라고 했다. 출혈량이 많으니 기저귀를 미리 차는 게 좋다는 충고도 있었다.

“가짜 약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나는 그대로예요”라고 물어도 판매자는 일단 기다리라는 답만 되풀이했다. 사기라서 이제 와 발뺌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서 수술해야 하나.

◇의사의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 후 1시간이 지났다. 월경 중인 여자라면 누구나 아는 ‘굴’이 밀려 나오는 느낌에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제 됐다!” 김 씨의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직접 눈으로 임신 중단을 확인하니, 가빴던 숨이 이내 잦아들었다. 방 안에 앉아 다시 휴대전화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유튜브 영상은 그에게 도피처가 된다.

김 씨가 임신 사실을 확인한 건 지난해 여름. 벌써 4~5주 차에 접어들었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니 숨이 턱 막혔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상황을, 처음 본 의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김 씨에게 의사는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얼마 후면 방학이 끝날 터였다. 학기가 시작되면 본격 졸업 준비 기간이다. 온전히 취업 준비에 몰두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다. 아이? 말도 안 된다. 지워야 한다. “그게 아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종양? 막상 임신이 현실이 되니 그렇게 느껴졌어요.”

문제는 방식이었다. 수술은 자칫 의료 기록이 남아 가족에게 들킬 수도 있다. 고민에 빠진 김 씨에게 의사는 말했다. “약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미프진은 벼랑 끝 같은 상황에 내몰린 김 씨에게 최적의 선택이었다. 수술보다 가격이 싸고 시간에 맞춰 복용만 하면 돼 일정을 조정할 필요도 없었다.

통증은 불가피했다. 피도 많이 날 거라고 했다. 혹여 가짜 약을 먹어도,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가 찾아와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한다.

◇”약이 가짜일지 걱정됐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도 선택지는 하나였다. 김 씨는 의사로부터 해외 웹사이트 두 곳의 주소를 받아 적었다. 모든 절차는 은밀하게 진행됐다.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만 판매자와 연락할 수 있었다. 가격은 35만 원. 지연될수록 성공률이 낮아질까 두려워 허겁지겁 돈을 부쳤다.

“약이 가짜일지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망설이지 않았어요. 애 낳는 거보단 차라리 죽는 게 낫죠.”

판매자는 해외 직배송이라 일주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닷새 만에 약이 김 씨 앞으로 도착했다. 감기약으로 포장이 돼 있었다. 개봉하자 알약들 사이에서 손바닥만 한 밀봉 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장을 뜯으니 하얀 알약 5개가 나왔다. 지름 6㎜의 미소프리스톨 4알과 지름 1㎝의 미페프리스톤 1알이었다. 두 약을 통칭해 ‘미프진’이라고 부른다.

복용법은 간단했다. 첫날에 한 알, 그다음 날 네 알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두 번째 먹는 약은 역한 게 특징인데, 물과 함께 머금고 30분간 녹인 뒤 삼켜야 했다.

부모님이 며칠간 집을 비운다며 외출하자, 김 씨는 즉시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둘째 날이 힘들었다. 거듭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두 손으로 입술을 꾹 눌러 버텨야 했다. 한 달 남짓 지속된 임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솔직히 가짜 약 사기를 당했을 수도 있었어요. 그렇다고 누굴 탓할 수 없잖아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대왕 굴’은 사라졌지만 흉터는 남았다. 한동안 출혈과 복통이 이어졌다. 출혈이 심해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은 날도 있었다.

“삼계탕 찾아서 먹고, 몸조리 한 달 하니 많이 회복되더라고요.” 기름진 국물을 입안에 욱여넣는 그 순간까지 김 씨는 철저히 혼자였다.

◇과한 친절, 과한 정보…의심의 불씨

“약은 20만 원입니다. 거래는 어떻게 하실까요?”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정품 약은 맞을까. 외국에서 쓰던 약이라는데, 한국인에겐 안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만나서 하시죠.”

부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미연 씨(가명·28)는 지난해 의도치 않게 아이가 생겼다. 수년간 피임을 잘해오다 하필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임신 중단 외엔 도리가 없었다. 아이를 낳아 키울 돈이 없었고, 여느 20대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남자 쪽에서 임신 중단을 강하게 원했다.

무작정 포털 사이트를 접속해 미프진을 검색했다. 그나마 안전하고, 생리통 정도의 통증만 있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약물로 임신 중단을 하면 아무도 모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미프진 개인 판매자가 많다. 자신이 복용하던 약을 되판다고 광고하지만, 대부분이 어디선가 약을 떼와 파는 ‘전문 판매인’들이다.

박 씨가 접촉한 판매인들도 이들 중 한 명이었을 테다. 구매를 문의하자, 사후에 먹어야 할 진통제부터 주의 사항을 빼곡히 적어줬다. 과한 친절과 과한 정보가 오히려 의심의 불씨를 키우기도 했다.

“개인 판매자라기에는 너무 전문적이었어요. 그 때문에 판매자를 믿기 어려웠어요. ‘정품이 아니면 어떡할까’ 불안했어요.”

◇첫 임신 중단, 고통과 고독 속에서 끝났다

그러나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기록이 남을 게 뻔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미프진 효과도 발휘되기 어렵다.

결국 정체불명의 1㎝ 약에 자신의 몸을 맡긴 박 씨였다. 통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생리통 수준이 아니었다. 몸속의 장기가 마치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생리통 수준인 줄 알고 진통제 정도만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판매자가 생리통 정도의 통증만 있다고 해서 응급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지도 생각 안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찾아온 건 상상도 못 할 통증이었죠.”

박 씨의 첫 임신 중단은 고통 속에, 그리고 고독 속에 끝났다. 생리통은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생명을 없앴다는 죄책감이 한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래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고통보다 덜하다는 위안이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은밀한 방법으로 구한 미프진을 절대 먹지 말라고 해요. 가짜일 경우 과다 출혈로 쇼크까지 올 수 있잖아요. 근데 은밀한 방법 아니면 미프진을 구할 수 있긴 한가요? 차라리 중절 수술이 제도권으로 올라오면 떳떳하고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머니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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