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자본잠식’ 발행사, 환불 사실상 중단
부실해도 인지세만 내면 발행 가능한 허점
주무부처도 부재…정부·국회 ‘수수방관’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의 불똥이 해피머니 등 현금성 상품권으로 번지고 있다. 티몬이 주로 유통해왔던 해피머니 상품권의 결제가 막히면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해피머니 상품권 발행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환불마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피해자들은 잇따라 해피머니아이엔씨 대표를 고소하고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상품권의 발행과 유통을 제어할 법적 근거가 없는 현실이다. 은행처럼 돈놀이를 하면서도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해피머니 상품권을 환불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이날 오후 여의도 금융감독원 민원실 앞에서 피해자 구제 대책을 촉구했다.
앞서 티몬과 위메프 등에서는 해피머니 상품권을 7% 이상의 높은 할인율로 판매하며 인기를 끌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해피머니 가맹점 대부분이 관련 결제를 차단하면서 상품권은 무용지물이 됐다. 발행사인 해피머니아이엔씨 측은 환불 절차를 진행해왔으나 지금은 이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회사는 지난달 31일 공지문을 통해 “티몬·위메프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들 회사로부터 미지급대금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고객예치금으로 환불을 진행하고자 그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 관련 기관과 전문가에게 조언을 요청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티몬 등 큐텐 계열을 통해 판매된 미정산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환불 처리가 가능할 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이라는 입장이다.
아무나 찍어내더니…이용자 보호 조치 전무
문제는 해피머니 상품권을 발행하는 해피머니아이엔씨가 선불업체로 등록돼 있지 않고 지급보증보험도 가입하지 않아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상품권인 ‘컬쳐랜드’의 경우,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은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에 따라 선불업체로 등록돼 있어 선불충전금의 100% 이상을 지급보증보험 등으로 별도관리하고 있다.
반면 해피머니 이용약관에는 “본 상품권은 별도의 지급보증 및 피해보상보험계약 없이 발행자의 신용으로 발행됐다”고 명시됐다.
다시말해 이용자에 대한 안전망 없이 발행자의 신용에만 기대 현금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유통한 것이다. 여기에 티몬과 위메프에서는 해피머니를 할인 판매하면서 자금 조달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재무상황은 더 심각하다. 해피머니아이엔씨의 부채 총계는 2960억원으로 자산총계(2406억원)를 넘어선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현금 보유량은 435억원에 불과하다. 자체적으로 환불을 이행할 여력도 안 된다는 의미다.
상품권, 법으로 규제 근거 마련 필요
정부는 해피머니의 발행 규모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해피머니 수수료 수익은 1259억원으로 컬쳐랜드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발행 규모가 타 업체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금융당국으로서도 마땅한 조치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선불업 미등록 업체에서 발생한 피해는 제도적으로 보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썬 상품권 발행업자에 대한 감독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관련한 담당 부서도 마련 돼있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금융당국이 맡고 있는 정산지연 문제를 제외한 소비자 피해에 집중하고 있다.
해피머니아이엔씨는 오는 9월 전금법 개정안 시행 이후에야 선불업 등록 의무가 생긴다. 지난해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마련된 개정안은 선불업 감독 대상을 기존보다 확대했다. 개정안에 따라 선불사업자는 포인트·상품권 등 선불전자지급수단을 발행하고 받은 돈을 100% 은행 등에 예치해야 한다.
다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금법 개정안은 상품권 발행사의 자격 요건은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실한 업체라도 인지세만 납부하면 발행이 가능하다. 전금법이 아닌 상품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999년 폐지된 상품권법은 발행자의 자격요건 및 금융위원회 등록 의무, 연간 발행 한도 제한, 상품권 이용자의 권리 보호 의무 등을 담고 있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 각각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전자 상품권 시장은 규제 없이 급속도로 성장해 지난해 10조원을 넘어섰다”며 “실효성 있는 제도를 구축하지 못하면 ‘제 2의 티메프 사태’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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