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의 3번째 시리즈이자 마블 스튜디오에서 처음 그를 선보이는 본작은 개봉 전부터 그 기대감이 엄청났다.
몇 년 전 본인은 사례뉴스에 현 디즈니 CEO 밥 아이거의 경영 철학을 칭송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정석적이면서도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감각으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따른 성공을 인수를 통해 몸집을 빠르게 불리는 재투자로 치환하여 디즈니가 콘텐츠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공을 인정받은 그는 2019년 타임지에 의해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그의 경영 능력에 대해 점점 물음표가 떠오르는 현 상황이다.
2020년 디즈니 CEO에서 사임한 후 추락하는 주가를 회복하기 위해 2022년 11월 복직했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큰 변화는 없다.
특히 루카스필름 인수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의 부진과 ‘정치적 올바름’ 밀어주기 논란은 그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을 한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센세이션이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약 5년이 흘렀는데 공개된 작품은 대부분 상술한 비판점과 거의 동일한 원인으로 미적지근하거나 혹평을 받고 있다.
간혹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같은 성공 사례도 존재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시점에서 24일 개봉한(한국 시각) <데드풀과 울버린>(연출 숀 레비)은 세계관의 커다란 전환점이자 시리즈를 소생할 기회로 여겨져 큰 기대를 받았다.
우선 <데드풀> 시리즈 자체가 여타 세계관의 작품과 결이 한참 다를뿐더러 20세기 폭스에서 벗어나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첫 <데드풀> 시리즈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게다가 <엑스맨> 시리즈의 상징적 인물인 울버린(휴 잭맨)의 합류와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와 <리얼 스틸>, 최근에는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와 <프리 가이>로 국내 대중에게도 익숙한 숀 레비 감독의 연출이라 기대감이 배가되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단평하자면 스타일이 기존 작품들과 정반대에 있어 신선한 재미를 불러일으켰고, 대중적으로는 청소년 관람 불가(미국 R등급)임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흥행 성과를 거두고 있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사와 형식은 공산화된 마블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관에 TV 시리즈를 추가한 이래로 MCU는 4년 넘게 공산화라는 비판의 그늘 아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어떤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그전에 제작된 영화와 TV 시리즈 몇 편을 전부 감상해야 한다.
서사에 구멍이 생기면 멀티버스라는 무적 소재를 이용하여 편의적으로 해결하고, 그 멀티버스를 위해 수많은 캐릭터가 소모되고 희생된다.
마치 대의를 위해 국민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공산주의적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데드풀과 울버린>도 완전한 이해를 위해 오리지널 <엑스맨> 시리즈와 <로건>, <로키> 시리즈를 감상해야 하고, 소소한 유머까지 이해하려면 더 많은 작품이 추가된다.
하나의 우주에 세계관의 캐릭터를 집중시키기 위해 욱여넣은 시간선 소멸 설정은 소재를 위해 이야기를 희생하는 주객전도의 형태를 띤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와 엘렉트라(제니퍼 가너), 로라(다프네 킨) 등의 캐릭터, 그리고 후반부 대거 등장하는 데드풀 군단 또한 멀티버스와 신 하나를 위해 소모될 뿐이다.
이는 예술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이전의 피드백을 보완하지 못했다고 해석된다.
사실 가장 큰 강점인 유머마저 1, 2편을 그대로 답습했기에 때에 따라서는 지겹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데드풀>식 유머의 가장 큰 특징은 끝이 없는 수다와 거기서 비롯되는, 이른바 ‘뇌절’이다.
애초에 반응이 갈리는 유머의 방법론이지만 가족 관객이 주가 되는 히어로물에서는 유례없는 유혈 수위와 제4의 벽을 깨는 등 틀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통해 이를 무마했다.
그러나 세 편째 반복되는 유머 방법론은 관객들에게도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여지가 있다.
물론 재미있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1, 2편과 비교하면 신선함을 무기로 삼은 <데드풀> 식 유머가 점점 그 생명력을 소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본작의 가장 큰 주안점이었던 헌정과 팬서비스에 대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로건>의 묘지를 훼손하는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모습과 함께 세기말 팝 음악의 상징인 엔싱크의 가 삽입되는 첫 시퀀스는 처음부터 영화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내포한다.
예상대로 블레이드와 엘렉트라 등 구작의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으나 끝내 구현되지 못한 갬빗(채닝 테이텀)은 그 자체로 유머 포인트가 된다.
또 주인공 울버린과 그와 깊은 관계를 지닌 로라가 대화하는 서비스 신은 감동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오프닝의 시체 훼손이 결국 데드풀식 헌정이었음을 밝힌다.
엔딩 크레딧의 과거 엑스맨 영화 촬영 현장은 마지막까지 감흥을 잃지 않도록 만든다.
이를 위해 캐릭터들이 소모되긴 했으나 어쨌든 소모의 목적은 어느 정도 부합한 듯하다.
액션 연출도 그 질이 상당했다.
전체적으로 유혈이 낭자한 액션의 포인트를 잘 살린 모습이다.
상술한 오프닝의 와 함께 데드풀이 로건의 뼈로 상대를 학살하는 시퀀스는 음악과 함께 영화의 경쾌한 리듬감을 고취했다는 점에서 헌정의 측면 말고도 영화적으로 잘 연출된 장면이다.
울버린과의 1대1 액션과 <올드보이>를 오마주한 듯한 마지막 롱테이크 액션 또한 그 자체의 질과 캐릭터 가치를 모두 살려 호평받을 만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헌정이라는, 제1의 목적은 달성했고, 그 자체적인 장점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시리즈의 비판점을 답습하고 기존에 데드풀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장점마저 끝없이 반복하여 희석되게 만든다.
그렇기에 세계관에 새로운 변혁을 이끌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감마저 완전히 충족하지는 못했다. 전성기 디즈니의 작품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키우게 만들어 미래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마블을 위시한 현 디즈니 작품들은 계속해서 과거만 회자하고 있다. 다시 사람들을 꿈꾸고 상상하게 할 디즈니, 혹은 마블 작품이 하루빨리 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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