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 11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의 올해 기금 투자 수익률이 해외 주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로 2% 수익률을 낼 때 해외 증시에서 16%의 성과를 내며 기금 적립금을 불렸다. 인공지능(AI) 투자 광풍을 타고 주요 기술주 주가가 상반기 내내 훨훨 난 덕이다. 국민연금은 운용 자금의 절반 이상을 해외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다만 주요 기업의 막대한 AI 투자 행보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AI의 투자 대비 효과(ROI)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서다. AI 투자 축소에 따른 미국 증시 조정은 해외 투자 의존도를 키워가는 국민연금에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
◇ 韓 증시서 2% 벌 때 16% 수익률 낸 해외 증시
2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2024년 5월 말 기준 국내외 주식·채권과 대체투자 수익률 등을 포함한 기금운용 수익률은 6.67%(금액가중수익률 기준)로 집계됐다. 자산별 수익률을 보면 해외 주식이 16.13%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대체투자 6.76%, 해외 채권 5.77%, 단기자금 2.48%, 국내 주식 2.23%, 국내 채권 0.04% 등이 따랐다.
국민연금은 연초부터 지속해서 해외 주식의 도움을 받고 있다. 국내 주식 수익률이 -5.98%로 흔들렸던 지난 1월 말 기준 집계에선 해외 주식 수익률이 5.17%로 선방한 덕에 전체 수익률을 플러스(1.09%)로 유지할 수 있었다. 각각 5월 말과 6월 말 공개된 올해 3·4월 기준 기금운용 수익률 역시 해외 주식 홀로 13% 넘는 성과를 과시했다.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에 힘입어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4월 말 1103조5150억원에서 5월 말 1113조5120억원으로 1개월 만에 9조9970억원 늘어났다. 해외 주식 적립금만 따로 보면 4월 말 367조7010억원에서 5월 말 377조210억원으로 한 달 새 10조원가량 불어났다. 적립금 증가도 해외 주식 운용의 도움을 고스란히 본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은 기대 수익률이 국내보다 나은 해외 투자로 방향성을 잡은 상태다. 주식·채권·대체투자를 포함한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규모는 2019년 257원에서 2023년 534조원으로 277조원 늘었다. 전체 투자에서 해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1.6%였는데, 국민연금은 오는 2028년까지 이 비중을 6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 “AI로 진짜 돈 벌 수 있어?” 쌓여가는 피로감
문제는 국민연금이 의존도를 계속 키우고 있는 해외 증시, 특히 미국 증시가 AI 거품론에 휩싸여 큰 변동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간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은 AI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들 빅테크가 일으킨 AI 열풍은 기술주 중심의 미 증시 고공 행진의 배경이 됐다. 2022년 말 등장한 챗GPT도 기술주 랠리를 부추기며 2조달러(약 2742조원) 넘는 자금을 긁어모았다.
그러나 최근 시장에서는 AI 투자로 과실을 얻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AI가 성공적으로 돈을 번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시장 불안은 빅테크 실적 공개와 함께 더 확산하는 분위기다. MS가 공개한 2024회계연도 4분기(4~6월) 실적에 따르면 이 회사 매출은 전년 대비 15% 늘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 MS가 AI 등에 투입한 자본지출은 전년보다 78%나 늘어난 190억달러(약 26조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VC)인 세쿼이아캐피털은 “주요 빅테크의 AI 투자는 연간 6000억달러(약 823조원)에 달하지만, 수익은 아무리 높게 봐도 1000억달러(약 137조원) 미만”이라고 분석했다. AI 빅테크가 수익성을 이유로 언젠가 출혈 경쟁을 멈춘다면 엔비디아와 같은 AI 칩 공급 업체 주가도 흔들릴 것이다. 이는 결국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에도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또 AI 열기 둔화는 해외뿐 아니라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납품하거나 납품을 준비 중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실적에도 악재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빅테크 업체들이 비용 증가와 AI 매출 저조, 재고 증가, 경기 둔화 등을 이유로 내년부터 투자 강도를 완화한다면 HBM 수요도 현재 시장의 높은 기대치를 밑돌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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