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4년 전 오늘 새벽 울산 남구 번화가의 한 소주방 조리원으로 일하던 전휘복 씨(당시 52세·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전 4시 20분께 동료 부부와 함께 퇴근하던 전 씨는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고 이것이 전 씨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이후 8개월이 지난 2011년 4월 17일 울산 부곡동 철거촌 인근 풀숲에서 한 양봉업자가 백골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 근처에는 전 씨의 옷가지와 빈 지갑이 흩뿌려져 있었고, 국과수의 DNA 감정 결과 시신은 전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 실종 당일 딸 폰으로 온 4통의 ‘현금서비스 이용’ 문자
2010년 8월 2일 평소처럼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야 할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이날 오후 전 씨의 자녀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성인에 대한 실종 신고는 가출 가능성 등으로 인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고, 전 씨가 사라진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전 씨의 자녀들은 일단 어머니가 일하던 가게로 돌아갔고 어디서부터 수소문을 해야 하나 고심하던 차에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전 씨가 쓰던 딸 명의의 신용카드로 누군가가 방금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 42분부터 46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현금 총 100만 원이 인출됐다는 문자메시지 알림이 연달아 울렸고, 카드가 사용된 곳은 놀랍게도 전 씨가 일하던 소주방에서 3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편의점 두 곳이었다. 전 씨의 자녀는 즉시 이를 경찰에 알리고 편의점으로 달려갔지만 현금을 인출한 이는 이미 편의점을 떠난 뒤였다.
CCTV 속 현금을 인출한 사람은 특징적인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이를 확인한 경찰과 전 씨의 가족은 함께 인근 수색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옷의 사내가 붙잡혔는데, 근처 안마방에서 삐끼(호객꾼)로 일하던 17세 박 모 군이었다.
◇ 안마방 10대 삐끼, 호객하다 수고비 3만 원 받고 심부름
하지만 박 군은 전 씨 딸의 신용카드도, 현금 100만 원도 들고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박 군은 호객하던 중 누군가의 심부름으로 돈을 인출했던 것이었다.
박 군은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호객하던 중 그 남성으로부터 “현금이 없다, 수고비를 줄 테니 네가 돈을 찾아다 주면 너희 가게에서 마사지를 받겠다”는 말을 듣고 돈을 인출했다고 진술했다.
안마방 주인도 이 남성을 기억했다. 남성이 술에 취해있었으므로 서비스를 해줄 수 없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얼마간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쫓겨난 남성은 택시를 타러 갔고, 이 남성이 탄 택시의 블랙박스에 그의 인상착의가 흐릿하게 담겼다. 이후 남성은 승차지에서 멀지 않은 야음체육관시장 입구에서 내린 뒤 사라졌는데, 그와 대화까지 나눈 목격자가 박 군, 안마방 주인, 야음동에 내려준 택시 기사까지 3명이나 있음에도 경찰은 아직 이 남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 택시 기사 전수조사 후 유력한 용의자 발견했으나…
전 씨 실종 직후 경찰은 전 씨를 마지막으로 태운 택시 기사를 찾는 데 힘을 쏟았고, 택시 기사 1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술 취한 손님의 카드를 훔쳐 절도죄로 구속돼 1년 정도 수감생활을 한 기사였다. 해당 기사의 운행 기록에는 공교롭게도 전 씨 실종 당일의 비슷한 시각인 새벽 4시 18분에 손님을 태워 4시 47분에 내려준 기록이 있었다.
운행 거리는 2.5㎞로 약 3200원 정도 나오는 거리인데 희한하게 미터기에 찍힌 요금은 7200원이었다. 4000원이나 더 나온 것이었다. 정차한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전 씨의 집 앞에서 시체 유기 장소까지의 거리를 이동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고, 더 이상의 물증도 발견되지 않았다.
전 씨의 시신이 버려졌던 철거촌 풀숲 인근 주민은 종종 택시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기억했다. 그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여기가 으슥하니까 데이트하러 오는 사람들은 종종 있는데 개인택시가 자꾸 오는 게 좀 수상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백골화된 시신에서는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경찰은 전 씨를 마지막으로 태운 택시 기사를 찾아내지 못했다. 박 군에게 현금 인출 심부름을 시킨 남성을 직접 상대한 목격자 3명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목격자들은 용의자로 지목된 택시 기사가 사건 당일 만났던 남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 “그 사람이 버린 꽁초 확보해야”…목격자 진술 무시한 경찰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은 것에 대해 경찰의 미흡했던 초동수사를 지적했다. 경찰은 사건 초기 박 군을 범인으로 단정해 증거물 확보를 소홀히 했다. 박 군은 자신에게 현금 인출 심부름을 시킨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렸으니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경찰은 박 군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꽁초는 유실됐고 경찰이 용의자의 DNA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서 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이 돼버렸다.
베테랑 형사 출신 한국범죄학연구소 김복준 연구위원은 “DNA만 확보했어도 범인은 언제 잡혀도 잡히는데”라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시체 유기 장소로 보아 범인은 그 지역에 살면서 지리감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술을 마시고 피해자의 실종 장소 인근에 또 나타났다는 것도 범인의 거주지가 그곳에서 가깝다는 뜻”이라며 사건의 해결 가능성을 높게 보고 경찰이 재수사에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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