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우리 가족 첫 유럽 여행 일정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끼어 있었다. 그때 리도섬을 일부러 찾아간 까닭은 당시 아직 어린 아들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전 가족여행은 주로 동남아시아 리조트에서 쉬는 휴양 콘셉트 여행이었다. 리조트마다 어린이 전용 풀이 있어 맘껏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걸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반면에 유럽 여행은 아이 입장에서 보자면 재미라곤 하나도 없는 고행길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박물관이 재미있겠는가, 왕궁이 재미있겠는가. 유럽 여행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여겨 빡센 일정을 잡은 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었다.
해외여행이랍시고 보름 넘게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 보니,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싶어 몸살을 앓았다. 그래서 하루 물놀이할 만한 곳을 찾아보니 베네치아의 리도섬이 제일 적당했다.
지중해 푸른 바다에서 수영은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었다. 그림엽서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떠올리며, 나도 지레 가슴이 설렜는데…아이쿠, 이런 낭패가 있나.
리도섬 해변에는 비키니 수영복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여자들이 꽤 있었다. 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가슴을 노출한 채 돌아다니거나 선-탠 하는 여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정작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변을 활보하는데, 죄도 없는 내가 공연히 낯이 뜨거워져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를 때라 그나마 좀 나았다. 하여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해 여름방학때 일이다. 당시 재직 중이던 학교 제자 열댓 명을 인솔하여 유럽엘 갔다. 그때 일정에 프랑스 해변 도시 니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 들어가 사고를 치면 어쩌나’하는 걱정만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남학생들에게는 니스 푸른 바다보다 더 매혹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가슴을 완전히 노출한 여자들이었다.
사춘기의 짓궂은 사내 녀석들은 횡재라도 한 듯 낄낄거리며 좋아했다.
“선생님, 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저도요. 그런데 아무개는 한참 동안이나 봤대요.”
“이번 일정 중에 니스가 최고인 것 같아요.”
이러면서 싱글벙글이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굳이 잘잘못을 가리자면, 중인환시 대낮에 그러고 있는 사람의 잘못이지, 강제 노출당한 사람이야 무슨 죄겠나. 그러니 학생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었다. 인솔교사인 나로서는 공연히 민망하여 안절부절못했지만.
그런데 니스 해변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해변 풍경을 그린 그림에서도 가슴을 드러낸 여자가 많았다. 그것이 그곳 일상이라면, 그것이 그들 문화라면 이방인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커플이 있었다. 하늘을 보고 누운 여자 친구의 풍만한 가슴을 정성껏 쓰다듬던 젊은 남자 말이다. 그건 너무 야한 것 아닌가? 이 또한 해외여행에서 만난 이색 경험이라고 해도 말이다. (에구, 이런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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