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에서 전 세계 첫 인공지능(AI) 규제 법인 AI법(AI Act)이 1일(현지시간) 발효됐다. 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AI 관련 규제가 본격 시행되는 가운데 2020년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한 한국은 실제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EU AI법은 지난 7월 12일 EU 관보에 게재됐고 이날 시행됐다. 당장 세부 법률들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2025년부터 EU에 있는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광범위하게 AI법 적용을 받게 됐다. 법을 어길 시 최대 3500만 유로(약 527억원) 또는 회사 글로벌 매출 대비 7%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우선 2025년 2월부터 ‘허용할 수 없는 위험’이 있는 AI 응용프로그램 사용이 금지된다. 직장·학교 등 감정 추론을 위한 AI 활용, 폐쇄회로(CC)TV 영상 등 수집을 통한 안면인식 데이터 구축 등 인권침해 우려가 큰 서비스·솔루션들이 대표적이다. 그해 8월부터는 챗봇 등 범용 목적의 AI 응용프로그램은 저작권법을 준수하고 데이터 저작권 출처를 밝혀야 한다.
이후 2026년 8월에는 나머지 조항들도 본격 발효될 예정이다. 다만 일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서는 부속서에 명기된 의무사항을 준수하도록 2027년 8월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명백히 악용될 소지가 있는 AI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규제하지만 고위험 AI라도 제대로 사용하면 편익이 큰 만큼 법에 정한 일정한 요건을 갖춘다면 허용될 수 있도록 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했다.
EU에서 AI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현재 ‘AI 기본법(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논의가 진행 중인 한국 상황에도 시선이 쏠린다. 한국은 2020년 7월 21대 국회에서 AI 관련 규제 법안을 처음 발의했고 이후 법안이 총 8건 나왔다. EU 집행위원회가 2021년 4월 AI 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처음 제안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작 자체는 한국이 더 앞섰다. 다만 한동안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생성 AI가 떠오르면서 법 필요성이 재차 부각됐지만 지난 5월 말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해당 법안들은 자동 폐기됐다. 이후 22대 국회에서는 현재까지 AI 규제법안이 총 6건 발의됐다. 전반적인 내용은 21대 국회에서 나왔던 법안들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공통적으로 고위험 AI의 범위를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토록 했다. 고위험 AI 사업자에 대한 각종 책무 규정과 생성 AI가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고지 의무화가 대표적인 규제 사례다. 여기에 AI 산업 기반 조성과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제도를 명시해 AI 규제는 물론 육성까지 아울렀다. AI 융합 서비스에 대한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 실증 규제특례 등으로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보다 원활하게 정착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코자 했다.
정부와 업계는 AI 기본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AI에 대한 규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보다 확실한 진흥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 등 방송 관련 사안으로 인해 사실상 다른 현안 논의를 하지 못하는 데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고위험 AI에 대한 범위 확대와 규제 강화 관련 주장이 계속 제기되면서 실제 법 통과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더욱이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도 AI 관련 입법 준비를 나선 상황이다.
이 때문에 AI산업진흥법 등 AI 관련 법안을 따로 분리해 이들에 대해서라도 신속한 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은 전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AI기본법 제정·전망 방향 세미나’에서 “(AI 기본법 제정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AI 산업 진흥 부문에만 집중하거나 AI 확산을 위한 리터러시 관련 트랙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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