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료가 월급을 넘어서기까지 7년간 직장생활과 작사를 병행했다”
유명 작사가 김이나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작사가의 삶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많은 작사가가 꿈을 위해, N잡러로 살아가고 있다. 4년 차 작사가 신효인 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효인 씨는 낮에는 어학원에서 일하고, 퇴근 후 동이 틀 때까지 가사를 쓴다.
매일 2~3시간을 자면서도,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난 25일 효인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사가 신효인입니다”라는 짧은 소개를 시작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사무직 직장인이었던 효인 씨는 7년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어릴 적 꿈이던 작사가를 떠올렸다고 했다. 지난 커리어를 통해 자신은 혼자 일하는 것이 더 적합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데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고. 결국 효인씨는 작사가 지망생의 길을 선택했다.
꿈에 다가가는 방법은 스스로 개척했다. 많은 작사가 지망생들은 작사 학원을 다니며 습작을 시작한다. 하지만 효인 씨는 홀로 부딪혀 터득하는 방법을 택했다. 월세와 맞먹는 학원비를 감당하기에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원을 통해 데모곡(임시 음원)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기발매곡을 개사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작곡가들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곡 분석’도 참고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글자수 별로 정리한 나만의 단어집을 만들고, 습작을 SNS에 영상으로 제작해 꾸준히 업로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죠.”
노력의 결과는 어땠을까. 벌스, 프리 코러스 등 곡의 구간을 나누는 것조차 어려웠던 초보 작사가 효인 씨는 점차 감을 찾아갔다. 실력이 늘어감에 따라 기회도 생겼다. 꾸준히 작사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4개월이 지날 즈음, 효인 씨의 습작을 본 한 프로듀서가 가사를 부탁한 것. 그렇게 효인 씨는 드라마 ‘나의 별에게’ OST ‘I’ll be there(뉴키드)’이라는 곡으로 작사가 데뷔에 성공했다.
“방구석에서 혼자 습작했던 제가 제가 다른 분과 작업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곡이 발매되고 제가 쓴 가사가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걸 들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데뷔를 했다고 해서, 탄탄대로 작사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기회가 오기까지 긴 기다림이 이어졌다. 기약없는 기다림에 효인 씨는 포기하거나 실망하는 대신 더 치열하게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생계 유지를 위해 낮에는 어학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습작을 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학원에서 퇴근하면 6시 반쯤 되거든요. 30분 정도 잠을 자거나 밥을 먹고, 시안을 준비해요. 이르면 새벽 두 시까지, 필요하면 밤을 새서 작업을 하고요. 작업이 끝나면, 잠깐 눈을 붙이고 11시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합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계속 시안 작업을 했던 1년간 이 루틴으로 살았어요.”
효인 씨는 이 기간 작사한 곡이 약 120곡이었다고 덧붙였다. 에디터가 ‘작사가의 삶은 너무 치열한 것 같다’고 감탄하자, 효인 씨가 웃으며 답했다. “저는 모든 기회가 소중해서, 들어오는 시안을 다 작업했어요” 작사가 정말 하고 싶다는 효인 씨의 눈빛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신효인씨가 작사한 ‘에이스’의 Christmas Love 가사 영상(출처=유튜브 ‘Official A.C.E)
수많은 습작이 쌓여갈 무렵, 2023년 12월 드디어 두 번째 곡 ‘Christmas love(에이스)’가 세상에 나왔다. ‘Christmas love’는 효인 씨의 첫 아이돌 팀 곡이다. 보통 아이돌 팀의 가사 채택률이 3000:1인 걸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에디터도 직접 곡을 들어보니, 이 곡이 어떻게 높은 경쟁률을 뚫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설레는 기분 가득 담아 적은 초대장이야’, ‘단 하루이기에 더욱 특별해’ 라는 가사들에서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며칠 전, 드라마 OST 시안을 작업했다는 효인 씨. 하지만 그 곡이 실제로 나올 수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발매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제가 그동안 많은 시안을 회사에 제출했는데, 그중에 딱 2곡이 세상에 나왔잖아요. 처음에는 시안을 제출하고서 간절하게 채택을 바라곤 했어요. 숱한 좌절을 겪어본 이제는 시안을 제출한 순간 그 곡을 머릿속에서 지워요. 그저 당장 해야 할 다음 시안 작업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거든요.”
이렇게 꾸준히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데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스토리’도 한몫했다. 효인 씨는 작사가가 된 이후, ‘작사가 신효인’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글에는 작사 팁부터, 작사 오디션 합격 후기, 곡 발매 이야기까지 작사가로서 밟아온 여정이 담겨있다.
“작사가 타이틀을 붙여 브런치를 오픈한 건, ‘작사가’로서 살겠다는 약속이자 포부를 세상에 던진 거였어요. 그 약속을 지키고자, 작사가로서의 삶을 계속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저 혼자만의 약속이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제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시고, 귀 기울여주시는 분들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거든요”
◆ “저작권료만으로 생활 어려워, 작사가에게 N잡은 필수”
4년에 가까운 작사가 활동을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큰 부담감은 없었을까, 에디터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자 효인 씨는 이렇게 답했다.
“작사가라는 꿈을 지키다보니, N잡러가 됐어요”
효인 씨는 현재 작사가로서 얻는 수익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작사가는 작사비와 저작권료로 수익을 얻는데요. 둘 다 가사 시안이 채택되어, 곡이 발매돼야 받을 수 있어요. 작사비는 곡 당 100만원 내외인데, 주는 회사도 있고, 주지 않는 회사도 있어요. 저작권료는 곡 지분과 판매량에 따라 매달 달라지죠. 꾸준히 시안이 채택되어, 커리어를 많이 쌓아야만 밥벌이를 할 수 있어요.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얻기까지 무척 긴 시간이 걸립니다. 작사가가 n잡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효인 씨는 부족한 수익을 채우기 위해, 어학원 일을 시작했다. 학원 카운터를 담당하거나, 아이들의 학원 차량에 동승하는 것이 효인 씨의 업무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생활이 불규칙했던 효인 씨에게 어학원 출근이 건강한 멘탈을 지키는 소중한 루틴이 된 것이다. “그 시간이 하루 종일 앉아서 작업만 하는 제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에요.”
무엇보다 어학원 일을 하며 창작에 꼭 필요한 영감을 많이 얻는다는 것이 효인 씨의 설명이다. “아이들을 태우러 가거나, 차에서 다 내려주고 학원으로 돌아갈 때 차에 기사님과 저만 남거든요. 그러면 혼자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게 1년 동안 같은 노선을 달리다 보면, 계절이 오고 가는 게 보이죠. 얼마 전만 해도 풍성했던 나무가 가지치기로 짧고 볼품없어진 걸 보기도 하고요. 이 일을 하며 아이들을 포함해 많은 것들에서 크고 작은 영감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 작사가로 큰 수익을 얻게 되더라도, 어학원을 그만두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효인 씨는 “어학원 측에서 그만 나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 계속 다닐 거예요! 저에게 정말 소중한 일터거든요”라고 자신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으로 효인 씨에게 마음 한 켠에 작사가의 꿈을 가진 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겪어봐야 내가 할 수 있을 지, 힘들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지 혹은 막상 해보니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닌지 알 수 있거든요.
저는 ‘그럼에도 하고 싶어서 계속 붙잡고 있는 케이스’에요. 시작할 때 무척 막막할 텐데요. 당장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다 보면 이 다음에는 뭘 해야겠다,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겠다 감이 올 거에요!”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