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측 장려로 시작한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진출이 경영 위기를 초래했는데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사실상 수수방관인 상황이라 비판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31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티메프와 거래한 뒤 판매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농가와 농업법인이 속출하고 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추산 중이지만 직배송으로 신선식품을 많이 공급하는 이커머스 특성상 쌀, 과일, 고기 등이 주로 판매됐다.
쌀을 판매한 A농업법인 관계자는 “7월 판매 금액 중 1억원가량을 받지 못했다”며 “티몬과 위메프에서 대규모 할인 행사를 진행해 판매 물량이 많았는데 (대금이) 다 잡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티몬과 위메프는 ‘당일 도정’을 강조하며 쌀을 판매 중이다.
축산업계도 피해를 호소한다. 티메프를 플랫폼 삼아 돼지고기를 판매하던 한 축산법인 관계자는 “6~7월 판매액 9000만원 정도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법인은 도산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B농업법인 관계자는 “5~7월 판매 대금 15억원(티몬 12억원·위메프 3억원)을 받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간다”며 “이커머스 비중 확대로 택배비와 인건비 등 운영 비용이 늘어난 탓에 (정산이 안 되면) 당장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정부의 이커머스 장려 정책이 티메프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정산 피해를 본 농가와 농업법인 상당수는 지난 5월부터 이커머스 판매를 시작했다.
해당 시기에 정부는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운영하는 유통 지원 포털 ‘판판대로’ 사업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판판대로를 통해 티메프와 연결된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정부와 맞손을 잡은 업체가 미정산 사태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웠다.
농식품부는 물가 안정 노력 일환으로 지난 1월부터 티메프 등 이커머스와 연계한 농축산물 할인 지원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커머스를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팔면 차액을 정부가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식이다. 판매자로서는 이커머스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농식품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한발 물러서 있는 형국이다. 여행·공연 등 분야 피해 구제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비행기 티켓 판매 논란 해소를 위해 국토교통부가 각각 TF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농업법인은 다른 중소 소상공인과 비교해 이익률이 낮다. 쌀 판매 법인은 농기자재 이용료 등 비용을 제외한 이익률은 2~3% 정도에 그친다. 농식품부가 TF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농업 관련 업체 특수성이 반영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작 농식품부 내부는 어수선하다. 담당 과도, 명확한 책임자도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일이면 원예, 쌀이면 식량 등 개별 파트별로 대응하는 상황이며 특정 조직이 총괄하고 있지는 않다”며 “피해 규모가 파악돼야 새로운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연 매출 중 10%를 잃을 위기에 처한 축산법인 관계자는 “전액을 다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도 나오면 좋겠다”며 “사태 파악이 끝나 지원이 시작되는 시점이면 이미 망했을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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