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예가 폴 볼커다. 201㎝ 키로 역대 연준 의장 가운데 최장신이었던 그에게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칭이 붙었다. 1979년은 두 차례 석유 파동과 달러화 발행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한창이었다. 당시 볼커는 취임 2개월 만에 연 11.5%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5.5%로 인상하고, 취임 2년 차에는 20%까지 끌어올리는 초고금리 정책을 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볼커와 많은 점이 닮았다. 192㎝의 큰 키로 역대 한은 총재 중 최장신이라는 것은 물론 볼커처럼 인플레이션 문제 해결이 당면 과제라는 게 그렇다. 이 총재는 사상 최초 7회 연속 금리 인상이라는 진기한 기록도 갖고 있다. 그의 키가 방증하듯 지난해 2월부터 연 3.50% 고금리를 역대 최장 기간 유지 중이다.
글로벌 통화긴축기를 지나 올해 초부터 주요국들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시동을 걸면서 국내에서도 금리 인하 목소리가 나온다. 여건은 상당 부분 갖춰졌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돼 내수 회복이 시급하다. 6월 물가도 이 총재가 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전제 조건으로 언급한 하반기 2.3~2.4% 흐름에 근접한 상태다.
다만 시점이 문제다. 7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전문가 중 상당수는 이달 금리 인하 소수의견 등장, 8월 인하를 예상했다. 언론도 7월 금통위 결과 소수의견이 1명일지 2명일지 예측하기 바빴다. 이들의 설레발이 무색하게 금리 인하 소수의견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가계부채 증가세와 고환율 등 금융 안정 우려 때문이다.
다시 한은의 시간이다. 내수 회복과 금융 안정 사이의 적절한 인하 시점을 찾아내야 한다. 완전한 통화정책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볼커마저도 임기 중 한 차례 실수를 범해 잡힐 듯했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르는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볼커는 회고록에서 “중앙은행의 신뢰성은 한번 잃어버리면 되찾기 힘들다”고 했다. 이창용호가 임기 후반 금리 인하기를 순항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