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김유승 기자 = 이달 중순 여당이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인 ‘인구전략기획부’를 출범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기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새 부처 설치 근거를 담고 법안 이름도 ‘인구위기대응기본법’으로 고치는 전부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컨트롤타워 설치보다 더 중요한 시대관을 빠트렸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본법상의 인구 정책의 목적과 이념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다.
현행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국가주의적 인식에 갇혀 저출생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기본법은 ‘국가의 경쟁력’을 최우선 목표로,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인구 구성의 균형과 질적 향상’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국민 삶의 질 향상이나 행복보다 ‘국가 경쟁력’이나 ‘국가 발전’을 더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당이 이름까지 바꾼 기본법 개정안 역시 ‘국가를 위해 애 낳아라’는 인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합계출산율 0.72명의 초저출생 사회가 현실이 되자 국내외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의 경쟁 완화나 수도권 집중 분산을 위한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이를 위해선 출산율 그 자체보다 국민의 ‘삶의 질’ 자체를 목표로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저출생은 지나친 경쟁 등으로 인한 개인의 불행이 누적된 현상인 만큼 아이를 낳을 만큼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정공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국가발전 논리를 앞세우고 ‘국민 삶의 질’은 계속 뒷전으로 한다면, 장기적 안목의 해결책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단기적인 출산율 반등에 혈안이 된 정부는 당장 반응이 나타나는 현금성 지원에 계속 치중할 것이며, 그 결과 청년의 삶의 질을 개선하거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만한 정책은 계속 뒷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여아 조기 입학’이나 ‘주 69시간 근로’와 같이 인구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발상이 ‘국가 발전’이라는 논리로 쉽게 용인될지도 모른다.
실제 인구 위기 대응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평가받는 스웨덴과 독일 등은 철저한 자기반성 속에서 국가주의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인구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 위기 대응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은 1930년대까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소자녀 부부 과세, 독신자 특별세 부과, 피임방지법 등 땜질식 정책을 이어가다, 자발적 부모 됨의 원칙·질적 목표 우선의 원칙 등 개인의 권리를 우선으로 하는 대전환을 이뤄냈다. 독일의 성공적인 인구 위기 대응의 배경에도 2000년대 출산율 제고보다 국민 삶의 질, 생애 과정 관점 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자리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회에 저출산기본법의 목표를 ‘삶의 질 향상’, ‘개인의 선택권’으로 바꾸는 일부 야당 의원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여야는 새 기본법에 담길 인구정책 철학과 관련해 서로 논쟁조차 하지 않고 있다. 22대 국회가 하루빨리 의견 수렴에 나서고, 인구 비상사태에 걸맞은 기본법 철학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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