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해주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세금만 뜯어 간다.”(이 무슨 아나키스트적 발상이냐 싶지만, 발목까지 잠기는 극한호우에도 목숨을 걸고 출근하고야 마는 이른바 ‘K-직장인’의 하소연이니 오해하지는 말자.)
그날 저녁 A는 이런 볼멘소리를 소주잔에 담아 한숨에 들이켰다. 매달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상당한 돈이 만져보지도 못하고 세금으로 나가는데 때만 되면 자동차세에 재산세, 주민세 등 무슨 세금이 그리 많냐면서. 투명한 ‘유리지갑’이니 급여명세서에 찍힌 소득세, 지방소득세 등 세금은 원래 본인 돈이 아니다. A는 당장 무슨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닌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장기요양보험료 등도 세금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프니까 사장’ B는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 받아 세금 내는 게 부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다는 기사를 보여주면서 본인이 그중 한 명이라며.
위택스엔 매달 개인과 법인이 내야 할 납세 일정이 빼곡하다. 이달만 해도 지방소득세(특별징수분), 재산세(주택분), 주민세(종업원분), 지역자원시설세, 레저세 등 신고 안내를 하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현대국가의 조세 원칙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국방과 치안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보호 아래 모든 경제주체가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니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나라가 해주는 건 하나도 없다’는 A의 말은 투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의 넋두리가 예삿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세금 안(못) 내는 걸로 치면 나라나 나나 마찬가지”라는 B의 자조 섞인 푸념이 더해진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경제 3주체에서 가계·기업은 그 많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정부가 세금을 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게 국가는 왜 세금을 내지 않을까.
궁금한 건 못 참는 ‘먹물’ C가 다음날 보내준 해답으로 의문은 풀렸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정부가 세금을 내지 않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과세여서 그 세수는 결국 재정에 귀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정의 복잡성과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돈이 오가는 것이니 불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국가 재산은 사익추구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근거가 된다. ‘국가 등에 대한 지방세 비과세제도’를 명기한 지방세법에 따른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가 아닌 개인과 법인에게 납세는 의무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겠나. 그런데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오만가지 절세팁이 수두룩하다. 그 만큼 세금이 과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도 ‘우리나라 이중과세 문제점 분석’ 보고서를 내고 국세·지방세 세목 25개 중 20개에서 이중과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부는 지난주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납세자 부담을 낮춰 경제에 온기가 돌게 하겠다는 게 정부의 바람이다. 정부안은 일단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고, 이후 그 온기가 서민들이 체감할 수준이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그날 저녁자리를 함께 했던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주 한 병에 출고가 기준으로 주세(72%), 교육세(30%)에 부가가치세(10%)까지 600원 이상 붙는다는 걸. 간간이 밖에 나가 담배까지 피웠던 B는 한 갑에 60%가 넘는 세금을 더 냈다. 결국 세금 내면서 세금 얘기를 한 셈이다.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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